「크레이지 코리언」|신성순<경제부 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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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얼마전 말레이지아를 방문했을때 이나라 사람들이 현지에 진출한 우리기업 근로자들을 가리켜 「크레이지 코리언」(미친 한국인) 이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게으르기 짝이 없는 이나라 사람들의 눈에는 맹렬히 일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꼭 미친 사람처럼 비치고 있다는 설명에 실소를 금치 못하면서도 우리가 중진국 중의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던 비밀이 바로 여기 있었구나 하고 가슴 뿌듯한 긍지를 느꼈다.
그런데 요즘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사분규의 양상과 일부 근로자들의 난동을 지켜보면서 말레이지아인들의 지적이 꼭 좋은 쪽으로만 해석할 일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뒤늦게 갖게된다.
근로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내세워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근로자에 대한 그동안의 대우가 잘못되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소외당한 설움이 맺혀있음도 사실이다. 한정부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86년의 경우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13· 6%인데 임금인상은 9·9%였다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한꺼번에 20∼30%, 심지어 80%까지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더우기 적자투성이 회사에 대고 연간 1백억원에 가까운 추가지급을 하라고 요구하는 일등은 회사와 공존공영하자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빨리 문닫게 하자는 얘기밖에 안된다.
주장을 관철하는 방법에서도 생산시설을 때려부수고 거리로 뛰쳐나와 선량한 시민의 재산을 파괴하거나 공공시설을 훼손하는 행위는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 해도 이해가 안된다. 이같은 지나친 행위는 무엇보다 근로자들의 주장의 정당성을 이해시키는데 마이너스가 되면 되었지 도움을 주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양상의 노사분규가 장기화할 경우 이제까지 쌓아올린 우리의 경제기반을 바닥에서부터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이미 나타난 결과만도 수출의 둔화와 물가상승을 가져왔으며 성장의 둔화도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애써 잡았던 세마리 토끼가 한꺼번에 달아나고 있다는 얘기다. 정말 「크레이지 코리언」이란 말을 들어야 되겠는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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