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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문턱에서 공간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노미경]

해마다 봄이면 리빙 트렌드 페어가 열린다. 내 업과 관련된 지라 매번 찾아가곤 하지만, 갈 때마다 전년보다 별로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작년 봄이었다. 여느 때처럼 별 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가볍게 찾아갔었다. 그런데 모두가 알만한 유명 국내 가전회사의 시그니쳐 부엌 전시공간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전통적인 부엌 공간이 아니라 마치 SF 영화 속 공간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원격 조종이나 단순한 터치만으로 이뤄지는 부엌에서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음식 상태를 알아서 조절하는 인공지능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둘러보면 볼수록 신기한 부엌 공간의 여러 기술들이 궁금해서 나레이터를 붙잡았다. 한참 동안이나 신기한 기술을 들으며 연신 신기하다는 표현을 나도 모르게 하곤 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이곳에서 밥을 먹고 요리를 한다고 생각하니 그 신기함은 어느새 눈 녹듯 사라졌다. 이토록 인간미 없는 부엌이라니.


아직까지 우리 현실엔 너무나 먼 부엌인 듯 했고, 좀 더 미래에 있을 법한 식사 이미지다 떠올랐다. 달랑 작은 그릇 하나에 몇몇 알약을 올려놓은 식사 자리가 떠올랐던 것이다. 이런 부엌에서 식사의 의미는커녕 가족들과의 대화조차 이뤄질지 의문이었다. 편리하다는 것이 곧 삶의 진리나 행복은 아니잖은가.

2016리빙페어에 전시된 LG시그니쳐 키친 공간

“요즘 아파트 편리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에 입주한 친구가 이제 외출을 해도 가스나 전기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웃는다. 스마트 폰만 있으면 밖에서도 조절을 할 수 있다면서 말이다.  최신 냉장고에는 웬만한 모니터만한 화면이 달려 있다. 그 화면은 인터넷과 연결되어 각종 정보를 보여준다. 게다가 음성으로 음식 조리법이나 온라인 쇼핑도 가능하단다. 이른바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이 집 안 곳곳에 스며들어가고 있다.  스마트폰을 갖고서도 단지 전화만 걸고 받는 것으로만 쓴다는 소위 386 중년 아주머니 세대들도 최첨단 4찬 산업혁명의 혜택을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는 셈이다.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상징인 사물인터넷은 각종 사물에 센서가 달려 있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보던 인터넷 기기는 사람이 조작 해야만 했다. 사물인터넷은 이런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저절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사람에게 뭔가를 제공한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어느덧 봄비 젖듯  피부에 스며든다.

사물인터넷처럼 인공지능은 드론, 무인자동차, 스마트폰의 동시통역 등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산업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그래서 과거 산업혁명의 충격만큼이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해서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한다.
산업혁명은 알다시피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시작한 1차 산업혁명, 전기와 컨베이어 벨트의 등장으로 인한 대량 생산체제가 마련된 2차 산업혁명, 그리고 반도체와 컴퓨터의 등장 등으로 디지털 시대를 만든 3차 산업혁명을 거쳤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중심이 되어 모든 사물이 스스로 유의미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여 가치를 만들어내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됐다.
인공지능의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는 요즘, 이제 더 많은 일자리도 로봇에게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 아이폰의 시리Siri나 구글의 나우NOW 서비스처럼 벌써 인공지능은 우리 곁에 와 있다. 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전화번호를 찾아줄 뿐 아니라 오케이를 외치면 날씨까지 가르쳐준다. 혹자는 너무나 외로워 시리와 같은 인공지능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 이제는 혼자 살아도 친절한 인공지능이 벗이 되어 외로움조차 느끼지 않는 삶을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이상하게도 서글픈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벌써부터 각종 미디어에서는 인간을 대체하는 로봇의 시대를 다루고 있다. 예상보다 빨리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대선의 주요 화두에서도 4차 산업혁명이 입에 오르내린다. 내가 하는 일에서도 얼핏 그런 기운이 감지된다. 스마트폰으로 실내 공간을 비추면, 그 공간 안의 디자인을 가상으로 꾸며보는 어플리케이션도 이미 나와 있다. 아직은 가구나 소품을 고르는 데 도움을 주는 수준이지만, 언젠가 ‘로봇 디자이너’가 등장할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구글 나우 앱 환경

내가 꿈꾸는 대로 이뤄지는 공간
요즘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의 어감에 찬반이 많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한국헬스케어디자인학회에서는 해마다 국내의 의료 현장에 필요한 디자인과 각종 사례를 발굴하면서 한 해 동안 이슈가 될 만한 주제들로 세미나를 개최하곤 한다. 얼마 전 춘계 세미나 준비에 앞서 화제 이슈로 삼을 것에 대해 토론을 했다. 단연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압도적으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막상 이에 대한 헬스케어디자인에 대한 사례들을 찾아보려고 하니 쉽지 않았다. 이제 문 앞에 서서 들어가려는 준비 단계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세미나의 주요 이슈로 올리지 못했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미 사람들의 일상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 의료 현장이란 공간에는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궁금해졌던 것이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 디지털보다는 사람과 사람의 인과관계와 소통으로 일을 이끌어 가는 중이다. 이러한 업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었던 나에게4차 산업혁명이란 말의 어감은 더욱더 생소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디지털 환경을 접목한 다소 미래지향적인 모습의 공간이 되어 사람들에게 쓰인다고 해도 설계부터 마무리까지의 프로세스를 고려하면, 공간을 바꾸는 역할자의 입장에서 인공지능은 그리 가까이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아직까지는 내가 이 혁명에 대한 이해의 폭이 얕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이 언젠가는 내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을 대신할 수도 있으리라는 가능성마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공간의 변화가 나로 하여금 새로운 변화를 요구할 것쯤은 짐작할 수 있다.


다만, 4차 산업혁명이 품고 있는 두 가지의 문제점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첫 번째는 공간의 양극화이다. 새로운 문명의 혜택은 결국 자본의 투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의 공간을 드라마 도깨비의 주인공처럼 뚝딱 만들어내는 황금덩어리라도 있으면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내가 원하는 환경을 제대로 구현한 공간과 그렇지 못한 공간의 양극화는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이다.


두 번째는 인간의 수동화이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인간은 말 한마디, 손가락 한 번 까딱거리는 것으로 공간을 활용한다. 편리하겠지만, 왠지 모르게 인간의 퇴회가 연상되는 것은 왜일까?

영화 아이언맨 속 주인공 스타크의 집 [사진 출처=구글 이미지]

원초적인 욕망과 니즈가 잘 반영된 공간과 자연의 공간

영화 <아이언맨> 주인공 스타크의 집을 보면서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인간 집사 못지않은 역할을 하고, 손만 뻗으면 곳곳에서 가상 스크린이 등장한다. 말 한마디에 모든 시설이 작동한다. 아마도 우리의 미래 공간들도 점점 이런 모습을 닮아가게 될지 모르겠다. 또 우리의 병원 역시 의사선생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인공지능의 처방을 기다리는 환자로 채워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병원 공간은 또 무엇을 담아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환자들이 로봇과 인공지능의 어색한 음성을 듣는 것으로 치유의 감정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병원 공간은 더욱더 치유의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변화되어 가리란 예측도 해본다. 과거의 산업혁명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러다이트 운동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영국의 공장지대에서 일어난 노동자에 의한 기계파괴운동처럼 저항의 움직임이 있듯이 말이다. 좀 더 평온하고 자연친화적인 공간에 대한 기대를 통해 디지털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인간의 본능을 찾아가려 하지 않을까?

공간디자인은 기술적인 면에서 4차 산업혁명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이 머무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간의 본질을 캐치하고, 환자를 비롯한 사용자들의 경험과 감성까지 맥락을 ‘이해’하여 마치 내 몸을 감싸는 듯한 공간들이 차츰 등장할 것이다.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놀랄 만한 공간들이 계속 창조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원초적인 사람의 근원적 욕망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그것은 아무것도 가미되지 않은 순수자연 ‘태초’ 그대로의 공간이 아닐까. 디자인 없는 공간 그대로의 자연에 대한 동경이 사람들의 마지막 귀결점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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