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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금 따러 가자, 한국 하키 ‘기·상 나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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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990년대 국내 실업 아이스하키팀이 캐나다 전지훈련을 갔을 때 일이다. 낯선 현지팀과 연습경기를 했는데 1-8로 완패했다. 알고보니 상대는 캐나다 동네 피자배달원과 집배원이 모여 만든 동호회 팀이었다. 그만큼 한국 아이스하키와 세계와의 격차는 컸다. 그러나 웃지 못할 이런 해프닝도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됐다. ‘동네북’ 신세였던 한국 아이스하키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간 아이스하키 불모지였다. 하지만 국가대표팀 에이스 김기성(왼쪽)과 동생 상욱은 평창에서 기적을 꿈꾼다. [고양=김성룡 기자]

한국은 그간 아이스하키 불모지였다. 하지만 국가대표팀 에이스 김기성(왼쪽)과 동생 상욱은 평창에서 기적을 꿈꾼다. [고양=김성룡 기자]

한국(세계 23위)은 9일 고양 어울림누리에서 열린 덴마크(13위)와의 유로챌린지(국가친선대회) 1차전에서 김상욱(29·안양 한라) 등의 골을 앞세워 4-2 역전승을 거뒀다. 세계선수권 월드챔피언십(1부리그) 소속 덴마크를 상대로 5연패 뒤 첫 승을 거두는 이변을 연출했다. 한국은 세계선수권 2부리그에 속해있다. 한국은 10일 헝가리(19위), 11일 일본(21위)과 맞붙어 유로챌린지 우승을 노린다. 앞서 한국은 지난해 11월 유로챌린지에서 오스트리아(17위)와 헝가리를 연파하고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백지선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
에이스 공격 라인 맡은 두 형제
“2002년 축구처럼 평창서 일 낼 것”
9일 덴마크와 대결선 첫 승 이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에서 활약했던 캐나다 동포 백지선(47) 감독이 2014년 지휘봉을 잡은 뒤 한국아이스하키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우수인재 특별 귀화를 통해 외국인 출신 선수 6명이 가세한 것도 큰 힘이 됐다. ‘대한민국의 에이스’ 김기성(32)-상욱 형제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실업팀 한라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형제의 활약 덕분에 팀은 2016-17시즌 아시아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아이스하키는 공격진 3명이 한조로 총 4개 라인이 수시로 교체된다. 김기성-상욱 형제는 지난해부터 대표팀에서 마이크 테스트위드(30)와 함께 에이스 공격 라인을 맡고 있다. ‘골잡이’ 김기성은 대표팀 통산 득점 1위(49경기 49골), ‘ 도우미’ 김상욱은 어시스트 2위(25경기 19개)다.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 아버지 김경화(66)씨 밑에서 자란 두 선수는 경성중 ·고교를 나란히 졸업한데 이어 연세대-한라-국군체육부대까지 똑같은 코스를 밟았다. 형제는 20년 넘게 빙판 위에서 호흡을 맞춘 덕분에 이제는 눈빛만 봐도 통할 정도가 됐다. 지난 6일 고양에서 만난 김상욱은 “형이 있을 것 같아 패스하면 정말로 그 곳에 있다. 텔레파시가 통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기성은 지난해 4월 세계선수권에서 김상욱의 패스를 받아 골을 터트리면서 34년 만에 일본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두는데 주역이 됐다.

김기성-상욱 형제는 2012년 핀란드 2부리그에서 뛴 적도 있다. 김상욱은 “핀란드 헬싱키 근교는 오후 4시면 컴컴해진다. 형과 삼시세끼를 해먹으면서 원정경기 땐 8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며 “유럽 선수들과 부딪히면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백지선 감독은 “김기성-상욱 형제는 쌍둥이처럼 호흡이 잘 맞는다. 하루가 다르게 기량이 성장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아이스하키는 보디체크가 허용되는 격렬한 스포츠다. 테스트위드 등 귀화선수 3명은 앞니가 몇 개씩 빠진 상태다. 김기성은 “지난달 아시아 리그 도중 상대와 부딪혀 부상을 당했다. 빨리 재활훈련을 마치고 22일부터 일본 삿포로에서 치러지는 겨울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따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선 세계 1위 캐나다 대표팀과 같은 조에서 맞대결을 펼친다. 김기성은 “캐나다는 축구로 치면 브라질·스페인·독일을 합한 연합팀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표팀 라커룸 곳곳엔 백 감독이 붙여놓은 문구가 가득하다. ‘We can be great(우리는 위대해 질수 있다)’, ‘Go for thd Gold(금메달을 향해 전진)’ 등이다. 김상욱은 “모두가 안될 거라고하지만, 감독님의 말처럼 발전을 거듭하다 보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축구대표팀이 4강 신화를 만들어낸 것처럼 우리도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고양=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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