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G] [두근두근 인터뷰] 한양대 5대 명강의 남영 교수② 고3처럼 하면 혁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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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 교수의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 수업은 한양대 학생들 사이에서 명강의로 소문난 과목이다. '과학사'라는 생소한 분야를 다루지만 남 교수는 이 수업을 통해 베스트티처, 강의우수교수로 선정됐다. 지난 해 8월 강의 내용을 담은 『태양을 멈춘 사람들』(남영 지음, 궁리 출판)을, 지난 달에는 학생들과의 질의응답을 다룬 『젊은 과학도를 위한 한 줄 질문』(남영 지음, 궁리 출판)을 펴냈다. 인터뷰 편에 이어 TONG 청소년기자단이 남 교수를 만나 질문 받는 교수를 자처한 이유를 물어봤다.

[두근두근 인터뷰] 한양대 5대 명강의 남영 교수① “과목명에 일부러 ‘과학사’ 넣었어요”

-수업 중에 ‘한 줄 질문’이라는 특이한 행사가 있던데요.
"처음 강의를 개설했을 때 학교의 과학사 마니아들이 수강했나 봐요.(웃음) 거의 매주 상당히 어려운 수준의 질문이 e-메일로 날아들기 시작했죠. 알지 못하는 내용은 다른 교수님께 여쭤가며 나름대로 열심히 답변했어요. 그리고 아주 훌륭한 질문은 수업시간에 언급하며 다른 학생들과 공유했죠. 그러다보니 모든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아보면 훨씬 풍요로운 수업이 이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질문은 어떻게 받나요?
"한국 학생들은 질문 하라고 하면 수줍어 하니까 써서 제출하라고 했어요. 즉문즉답은 저한테 어렵기도 하고요. 일단 질문을 받은 다음에 다음 주에 대답하는 형식이에요. 그러면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있으니 저한테도 좋죠. 막상 질문을 받으니 제가 더 고민하고 성장하게 되더라고요. ‘한 줄’이라고 정한 이유는 질문이 정말 쉬운 거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아무거나 괜찮으니 한 줄로 물으라는 거죠. ‘뭘 좋아하세요?’부터 ‘진리가 뭐예요?’까지 별별 질문이 다 나와요."

-질문에 대한 부담은 없으신지.
"언제나 긴장되죠. 답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질문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얻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질문 받는 시간이 기다려져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고민하게 만들 때도 있거든요. 아무래도 요즘 사회가 영어 공부를 자꾸 강조하는 시대여서 저까지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고체계가 전혀 다른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 때문에 외국어를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질문도 마찬가지예요. 학생들의 질문을 통해 30, 40대와 전혀 다른 생각이나 다른 학문을 공부하는 전공자의 관점을 알 수 있다는 거죠. 그게 저로서는 당연히 ‘꿩 먹고 알 먹는’ 좋은 기회고, 그런 브레인스토밍 과정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질문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는지와 똑같아요. 영어 공부할 때 듣고, 따라하는 거처럼 다른 사람이 어떻게 질문하는지 잘 듣고 따라하면 늘어요. 학기 중과 학기 말의 질문을 비교해보면 기말고사 전에 받은 질문의 수준이 월등히 높고 내용도 구체적이에요. 이전에 질문의 피드백을 들으면서 어떻게 해야 질문을 잘 할 수 있는지 알게 된 거죠. 한 마디로 좋은 질문의 샘플을 학습하니까 수준이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요. 내 질문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비교해보고, 깨달은 다음에 다시 질문하는 기회를 꾸준히 가져야 해요."

-무조건 질문을 많이 한다고 왕도는 아닐 것 같은데요.
"당연하죠. 예를 들어 내가 피겨 선수인데 눈앞에 김연아가 나타나면 물을 게 당연히 많겠죠? 아는 분야이니까 그 분야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나 전문가를 만나면 질문이 산더미 같아요. 질문을 못하는 건 아는 게 없어서일 수도 있어요.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질문할 수 있는 거잖아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질문은 관심이 있고, 직접 해봤던 분야에 한해서 잘 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내가 모르는 분야나 해보지 않은 작업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한 질문 밖에 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조금 더 팁을 주신다면.
"‘비판적 글 읽기’를 할 줄 알아야 해요.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저자에게 무조건 호의적인 관점을 갖기 보다, ‘삐딱하게’ 읽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 반드시 질문할 거리가 나와요. 입시 위주의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는 한 가지 정답을 찾는 게 우선이었지만, 대학에서는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방법을 익힐 필요가 있어요. 특히 이과생들이 주의해야 해요. 문과생들은 답이 다양할 수 있다는 훈련을 받지만, 이과생들은 대학에 와서도 수학 공식처럼 모든 문제의 답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어떻게 살아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때마다 해줬던 답변은 ‘쥐었다, 풀었다 할 줄 알아야 한다'였죠. 긴장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살면서는 ‘멍 때릴 때’도 필요하거든요. 웬만해선 그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더욱 긴장을 푸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고요."

- 열심히 살아야 잘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열심히 하면 개량(改良)은 돼요. 나아질 수는 있다는 거죠. 하지만 혁신은 일어나지 않아요. 혁신은 풀어놔야 일어나거든요. 진공관을 예로 들면 연구원들을 몰아붙이고 밤 새워 일을 시키면 성능 좋은 진공관은 나올 수 있겠죠. 하지만 그보다 진보한 단계인 ‘트랜지스터’는 절대 나오지 않아요. 혁신이란 건 이전과 전혀 다르게 갈아엎지 않고는 불가능한 거잖아요. 마냥 열심히 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지요."

-하지만 어른들은 ‘노력’하라고 하는데요.
"지금 한국 사회는 개량이 잘 안 되고 있는 게 아니라 혁신이 잘 안 되고 있는 거예요. 고3들 입시 공부 하듯이 하면 혁신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아요. 하지만 ‘연구’는 혁신에 가까운 거거든요.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방법론을 분명히 바꿔야 한다는 거죠. 제 수업을 세 번 이나 수강한 학생이 있었어요. 첫 수강 때 B학점을 받았는데 A학점을 받을 때까지 재수강을 두 번이나 한 거죠. 똑같은 수업을 똑같은 사람한테 세 학기나 듣는다는 건 낭비예요. 제 수업이 그만큼 좋은 수업도 아니고요.(웃음) 근데 그 학생에게 중요했던 건 A학점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었어요. 요즘은 학점 하나가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시대니까요."

-그런 학생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이 시대의 단면이에요. 너무 안타깝죠. 혁신이 없다보니 계속 혁신이 없는 사회를 양산하는 거거든요. 요즘 학생들은 영어도 저보다 훨씬 잘하고 스펙도 좋고, 제가 대학 다닐 때보다 두 배 이상은 공부에 시간을 투자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자신감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떨어져 있어요. ‘이렇게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모두 이 고민만 하고 있죠. 어쩌다 이렇게 움츠러들었는지 모르겠어요. 핵심은 사회가 여유를 주지 못한 거죠. 무엇을 하며 살지 고민할 여유 말이에요. 90년대까지만 해도 고민할 여유가 있었고, 그게 큰 자양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런 기회가 다 박탈된 거죠."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멍 때리는’ 시간이 결코 낭비가 아니고, 무엇을 하며 살지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해요. 지금 안하면 30대든 40대든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하게 되니까요. 인생 삼모작이라는 말처럼 얼마든지 직업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예요. 그러면 더 이상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를 구분한다는 건 무의미한 거죠. 과학 혁명 당시에 괴테가 뉴튼을 공격하는 게 당연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 시대에는 문학가가 과학자를 비판하는 게 자연스러웠다는 거예요. 전혀 안 될 이유가 없어요. 하지만 지금 사회 분위기는 전공자가 아니면 ‘입 다물라’는 식이죠. 그러다보니 점점 틀에 갇히고 요즘은 그런 경향이 극단적으로 심해진 거 같아요."

-‘잡종’과 같은 융합의 가치를 강조하시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가요?
"먼저, ‘잡종’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신 분은 서울대 홍성욱 교수님이에요. '융합'은 최재천 교수님이 ‘통섭’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죠. 한국적인 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무언가 잘 나간다 싶으면 모두 몰려가서 그 가치를 떨어뜨리잖아요. 융합도 동네방네 외치니까 사회 도처에 융합 피로도가 너무 심해진 거예요. 특히 대학의 경우 억지로 융합하는 사례가 많은데 대체로 인기 없는 학과를 없애고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융합을 가져다 썼죠. 그러니까 학생들은 자꾸 오해하는 거예요. 그냥 두 가지를 같이 하는 게 융합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게 아니라 ‘필요하면 하는 것’이 융합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국문학을 하다가 미적분을 배울 필요가 있으면 하는 것, 이게 융합이라는 거죠. 이과라고 안하고 문과라고 못하고 그런 게 아니고요. 무엇보다 융합이란 건 언제나 존재했던 것이에요."

-‘융합 학문'은 최근에 등장한 개념이 아닌가요?
"학문은 언제나 이합집산 해 왔어요. 18세기에는 동물학과 식물학만 있었죠. 근데 19세기에 현미경이 발전하면서 생물학이 등장한 거예요. 현미경으로 살펴보니 동물도 식물도 세포로 이루어졌으니 하나의 학문으로 다룰 필요가 생긴 거죠. 이렇게 자연스럽게 융합된 학문이 생물학인데 오늘날 아무도 생물학을 융합 학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죠. 즉 융합이란 언제나 존재해 왔고, 시대의 흐름 상 크게 일어나냐, 작게 일어나냐의 차이지 과도하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거예요."

-대학 진학을 앞둔 청소년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면.
"‘꿈이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대체로 생명공학자, 기자 같은 ‘직업’을 말해요. 그 다음에 반드시 한 번 더 물어 봐야 해요. ‘왜 그 직업을 가지려고 하나요?’라고 말이죠.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는 이유도 ‘무엇’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왜’라고 질문함으로써 보다 깊고 다른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거든요. 제 꿈은 사람들에게 과학 이야기를 재밌게 전달해 주는 거예요. 지금처럼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도 있지만, PD가 되어 과학 다큐멘터리를 만들거나 과학전문 기자가 됐어도 꿈을 이룰 수 있겠죠. 실제로 저는 30대 후반에 직업을 바꿨고, 외관상 프로그래머와 교수는 전혀 다르게 보이지만 연속성이 있어요. 지금 논문을 쓰는 데 프로그래머 시절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꿈은 직업이 아니라 작업이나 작품으로 설정해야 해요. 그래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고,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한 번 실패했다고 꿈을 버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알게 되죠. 이 직업을 성취하지 못했으면 꿈을 이룰 수 있는 다른 직업을 선택하면 되니까요. 그래야 쉽게 절망하지 않고요. 대학의 전공과 나의 직업이 일대일로 대응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인생이란 어느 시점에 결정되어 끝나 버리는 게 결코 아니니까요. 제가 샘플이잖아요.(웃음)"

인터뷰=장단비·최상인 TONG청소년기자
글=김재영 프리랜서 기자 tong@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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