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엔 '대한민국 수립', 자신들은 '건국','정부수립' 혼용해온 국편

중앙일보

입력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 캡쳐.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 캡쳐.

국정 역사교과서가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현하기로 확정하면서 역사학계와 시민단체 등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국정교과서 최종본, 1948년 '국가 수립'
국편 홈페이지엔 '건국', '정부 수립' 혼용해와
학계 "국편, 뉴라이트 주장 추종" 비판

그런데 국정교과서 편찬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국편)는 홈페이지에서 ‘대한민국 수립’뿐 아니라 ‘대한민국 건국’,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을 혼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지난달 31일 공개된 국정교과서 최종본은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못박았다. 현행 검정교과서는 이를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정배 국편 위원장은 “교과서가 북한은 국가 수립이라고 하고 우리는 정부 수립이라고 가르치는건 패배적 자학사관”이라고 강조했다. 학계와 시민단체 등은 최종본이 발표되자 즉각 반발했다.

독립유공자 단체인 광복회는 2일 성명을 내고 “대한민국 수립 기술 확정에 개탄한다. 국정교과서 보급을 막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1948년 국가 수립 표현은 1919년에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처음 사용한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국편 홈페이지에는 대한민국 수립에 대해 다양한 용어를 사용한 자료들을 게시하고 있었다.

사진: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 캡쳐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 캡쳐.

국편이 2008년 만든 ‘대한민국사연표’에 따르면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표기하고 있다. ‘건국’은 이른바 뉴라이트 학자들이 주장하는 표현으로,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1919년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무시한다’며 반대하는 용어다.

또 국편이 1993년부터 2002년까지 제작해 온라인에 게재한 ‘신편 한국사’ 52권에는 소제목으로 1948년을 ‘대한민국의 수립’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신편 한국사 본문에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이라며 혼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편이 매일 역사적으로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역사속 오늘’ 서비스에서는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건국’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학계와 역사교육계에서는 “국편이 최근 들어 뉴라이트 역사관을 추종하게 됐다는 증거”라고 지적한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대표는 “과거에는 국편이나 역사학계에서 국가 성립에 대한 용어에 민감하지 않았다.

뉴라이트 학자들이 ‘건국절’ 주장을 하면서 이념 논쟁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여러 용어를 혼용했던 국편이 국정교과서에선 ‘대한민국 수립’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뉴라이트 역사관에 물들었다고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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