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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삼성 국감 출석 막아"…바닥 모를 '안종범의 사초'

중앙일보

입력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에 대해 "사초로 봐도 무방하다"던 검찰의 말이 빈 말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실록 편찬의 기초가 된 사관의 기록인 '사초(史草)'에 견줄 만큼 박 대통령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안 전 수석의 수첩에 기록돼 있어서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깊은 연관성을 암시하는 내용들이 수첩 곳곳에 나타난다. 이번에는 박 대통령이 삼성 인사들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막으라고 지시한 내용이 드러났다.

2일 SBS 보도에 따르면 안 전 수석의 수첩 중 'V.I.P. 국감에 삼성 출석 않도록 정무위ㆍ기재위ㆍ교문위에 조치할 것'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안 전 수석은 "지난해 9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박 대통령이 세 군데 상임위에 삼성 인사들이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특검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미르와 K스포츠재단 의혹이 불거지면서 야당이 삼성 임원들을 증인으로 신청한 상태였다. 실제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로 삼성 임원들에 대한 증인 채택은 무산됐다. 박 대통령이 '교문위(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언급한 것에 대해 특검은 삼성의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출연 사실 등을 숨기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처럼 안 전 수석의 수첩에 들어있는 짧은 메모들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실체를 밝혀주는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다.

유재경 미얀마 대사의 인선 과정에 최씨가 개입한 사실을 밝혀낸 것도 안 전 수석의 수첩에서 발견된 '삼성 아그레망'이란 메모가 단서가 됐다. 외교관 파견국의 사전 동의를 뜻하는 아그레망이란 단어를 통해 특검은 최씨가 대사 임명 두 달 전 유 대사를 면담한 사실을 확인했다. 최씨가 박 대통령에게 '조언자' 이상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검이 확보한 안 전 수석의 수첩은 50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압수한 17건이 있었고, 30여 권은 안 전 수석이 특검에 직접 제출했다. JTBC가 입수한 최씨의 태블릿PC와 더불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실체를 밝혀줄 또다른 '스모킹 건'인 셈이다.

지난해 11월 박 대통령이 최씨와 안 전 수석, 정호선 전 청와대 비서관 등과 공모 관계에 있다는 검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청와대가 신뢰할 수 없다며 반발하자 당시 검찰 관계자는 "정호성 전 비서관의 녹취 파일을 단 10초만 공개해도 촛불은 횃불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내용에 대해선 "'사초'로 봐도 무방할 만큼 박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고 했다. 당시 검찰의 공소장은 '기름 뺀 살코기'라고도 표현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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