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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상원 ‘대북 선제타격론’ 23년 봉인 풀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대북 선제타격론의 봉인이 풀렸다.

“북핵, 기존 사고 벗어날 시간”
코커 외교위원장 첫 공론화
이순진 합참, 미 전략자산 요청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외교위 청문회에서 선제타격 논의를 공론화했다. 그는 “북핵 위협의 시급성은 기존의 사고를 벗어나 모색하는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며 “미국이 발사대에 있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격할 준비를 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반문의 형태지만 그간 협상과 제재를 맴돌았던 대북 정책의 한계를 벗어나 비현실적이라고 간주됐던 선제 타격 방안을 수면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코커 위원장은 또 “미국이 비군사적 수단을 이용해 선제적으로 정권 교체를 모색해야 하는가”라며 정권 교체도 꺼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윌리엄 페리 당시 국방장관이 북폭 계획을 준비한 이래 20여 년 만에 대북 초강경론의 부활이다.

코커 위원장은 한때 트럼프 내각의 국무장관 후보로도 거론됐던 미국 상원의 외교 수장이다. 합리적 성향의 외교론자인 그가 군사적 선제 타격을 공개 언급한 것은 미국 조야에서 기존 방식으론 북한의 핵 폭주를 막기 어렵다는 인식의 확산을 반영한다. 코커 위원장은 “북한의 위협은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임에도 “현행 대북 접근법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단언했다. 전략적 인내로 일관했던 버락 오바마 정부는 선제 타격을 사실상 배제했다. 오바마 본인이 2015년 인터뷰에서 “동맹인 한국이 옆에 있어 심각한 피해를 본다”고 속내를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등장하며 기류가 급변했다.

지난해 10월 TV 토론 때 “임박한 위협이 있다면 당연히 선제타격을 해야 한다”고 밝힌 게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다. 트럼프의 외교안보 라인은 대북 채찍을 전면에 내세운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후보자, 마이크 폼페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포진해 있다. 틸러슨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대북 협상론을 뜻하는 6자회담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상원 군사위원회에 북핵 시설을 재래식무기로 격퇴할 방안을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와 교감해 온 코커 위원장의 발언은 향후 대북 선제타격 논의와 구상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무르익고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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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상원 외교위에선 북한 도발에 대해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잠수함 격침 등 군사적 공격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진 시힌 의원으로부터 도발 대응책을 질문받고 “일례로 북한의 잠수함을 항구로 돌아가지 않게 하면 된다”며 잠수함을 수중 격침하는 보복 조치를 제시했다.

선제타격 공론화는 그 자체로 한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킨다. 트럼프 정부가 한국 정부에 선제타격 논의와 이에 따른 작전계획 변경 등을 위한 논의를 요구할 경우 한·미 연합 방위 체제에 있는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한·미는 일단 매티스 장관 방한에 맞춰 북한을 향한 군사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순진 합참의장은 이날 조셉 던퍼드 미국 합참의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지난해 12월 양국 합의의 이행을 요청했다. 당시 양국은 “한국 방어를 위해 미국의 전략자산을 정례적으로 배치(regularly deploy)하는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전략자산은 B-1·B-2·B-52 등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항모전단 등 전략 무기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이철재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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