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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광기는 짧고 예술은 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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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호 29면

또 다시 새해다. 신정이 지나고 설날이 오니 새해를 두 번 맞이하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든다. 신정에 인사드리지 못한 분들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설날 연휴 중 인사드릴 기회로 삼을 수도 있으니까.


설 만남에 참조할 정보도 눈에 띈다. 1월24일 언론에 공개된 취업포털 ‘사람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취업과 결혼이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금기어다. 이런 현상은 명절마다 재생산되는 실용 정보이기도 하다. 주로 어르신들이 관심 표명 차원에서 주도하는 결혼·취업 질문에 상처받았기에 그럴듯한 핑계로 빠진다는 풍문도 이젠 새롭지 않다. 관계 단절성을 넘어서는 대화 목록 중 인용해 볼 만한 것 중 하나는 “젊었을 때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봐라”라는 격려다. 물론 ‘나이들수록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는 새해를!’이라는 변형도 가능하다. 자유로운 개인의 삶은 자유로운 세상 만들기와 무관하지 않다. 자유를 먹고 사는 예술이기에 그것을 억압하면 풍자로 옆길을 만들어 나간다.


풍자적 패러디가 만발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까지 오버랩 되는 요즘, 예술적인 권력 탐구로 설날 여유를 풍요롭게 나누는 것은 어떨까? 영화가에서도 ‘권력 풍자 장르’가 한류영화 장르란 말을 증명하듯 ‘공조’(2016, 김성훈)와 ‘더 킹’(2016, 한재림)이 설 영화로 걸려있다. 검찰 권력을 다룬 ‘더 킹’의 출세지향 캐릭터 열전도 흥미롭다. “우리도 한번 폼나게 살아봐야 하지 않것냐”라는 꿈을 가진 초보 검사 박태수. 그의 롤 모델격인 한강식 검사는 “우리 제발 정의나 자존심 따위 버리자. 촌스럽게 왜 그러냐? 내가 또 역사 강의해야 돼”라고 내지르며 권력 난장판을 질퍽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역사교과서 문제를 찔러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아픔을 치유하는 웃음의 미학을 보여주는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1940)도 어디서나 접속 가능한 명작이기에 ‘같이 혹은 홀로’ 보는 설날 특선으로 추천하고 싶다. 이 작품이 유머 코드로 해부하는 히틀러의 권력 강박증은 예시적이란 평이 나올 정도로 적중률이 높았다. 이후 이 작품은 노래·춤·영화 등 다양한 패러디를 탄생시키며,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2015년 재개봉됐다. 또한 이 작품은 한국에서 상영 금지되었다가 1989년에야 빛을 본 검열사의 증명이기도 하다.


웃기게 변형시켰어도 곧 히틀러를 떠올리게 만드는 독재자 힌켈 역과 유대인 이발사 역을 동시에 맡은 채플린은 실제로 히틀러와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두 사람 모두 1889년 같은 해에 태어났고, 불우한 어린 시절과 함께 예술적 ‘끼’도 공유한다. 화가를 꿈꿨던 히틀러의 좌절이 권력광기로 폭발한 것이라는 심리학적 진단이 나오기도 했다. 이 작품을 상영 금지시킨 그가 홀로 보며 즐겼다는 뒷담화도 들린다. 얼굴 중앙에 포인트처럼 자리한 두 인물의 콧수염 스타일도 유사하다. 그래서 극악무도 가해자 힌켈과 가련한 피해자 이발사라는 대립된 두 캐릭터가 뒤바뀌면서 벌어지는 막판의 극적 반전도 그럴듯해 보인다.


이 작품의 명장면은 두 캐릭터를 대조해 보여주는 대목이다. 힌켈은 지구 풍선을 띄우며, 때론 검지 손가락으로 돌리고 발로 차면서 ‘세계를 내 안에’ 판타지에 도취한 발레식 판토마임 춤을 춘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제1막 전주곡을 타고서. 이어서 이발사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제5번, 유쾌한 춤의 리듬에 맞춘 이발 장면이 연결된다. 면도솔로 거품을 내고, 쓱~ 쓱~ 면도칼을 갈아 턱수염을 밀어내는 동작은 고객을 겁먹게 할 정도로 격정적이다. 심지어 고객의 민머리를 수건으로 마사지 해서 대머리에 광을 내주는 폭소 유발 장치도 있다. 예술의 힘을 아는 왕년의 미술학도 히틀러의 예술 통제술은 예술담당관 괴벨스의 내조로도 유명하다. 영화에서 괴벨스를 가비치 비서실장으로 패러디하여 혹독한 예술통제술을 고발하는 대목은 현재 이곳의 블랙리스트 예술정치 폭로에 공명하기도 한다.


‘제2의 채플린’으로 불리우는 로베르토 베니니는 이 작품에 대한 오마주로 ‘인생은 아름다워’(1998)를 만들었다. 파시즘이 시작된 1930년대 말, 우연히 닥친 행운으로 귀도는 도라와 결혼하지만 유대인 말살정책에 휘말려든다. 강제노동과 죽음의 일상이 지배하는 수용소에서 귀도의 유머 코드가 맘껏 피어난다. 자신은 학살당해도 어린 아들에게만은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그는 수용소를 생일파티 게임으로 풍자해 낸다. 장난감 탱크를 진짜 탱크 선물로 둔갑시키는 게임의 법칙으로 귀도는 아들을 매혹시킨다.


독일어가 공식어인 수용소이기에 귀도는 이탈리아어 번역을 창조해낸다. 울지 않기, 엄마 찾지 않기 등등… 높은 점수로 진짜 탱크를 얻으려면 침묵하기, 라고 창조적으로 통역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진정한 코미디의 힘은 비극을 품는 데서 나온다는 것을 깨우치게 된다. 그런 깨우침 속에서 권력의 만행을 풍자하는 예술의 기나긴 생명력이 증명되는 새해를 기원해 본다.


유지나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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