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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기업 혁신의 현장] 일도, 회의도, 휴식도 4명씩…지멘스 신사옥 ‘4의 법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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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독일 뮌헨 본사건물 코드는 소통

독일 뮌헨에 있는 지멘스 신사옥 전경.

독일 뮌헨에 있는 지멘스 신사옥 전경.

세계 최초 전기차 개발(1879년), 백열등 첫 대량 생산(1905년), 인류 최초 이식된 인공 심장 박동기 개발(1958년), 컬러 액정 핸드폰 첫 개발(1997년)…. 이들 기록은 모두 한 회사의 연구실에서 탄생했다. 바로 독일의 전기·전자기기 제조사 지멘스다.

“최적의 업무 단위가 4인1조” 철학
둘씩 마주 보게 모든 자리 배치
건물 중앙에 뻥 뚫린 공간 설치
회의 때 각층서 내려다보며 소통
유리패널 외벽, 태양열 냉난방 등
회사 보유 첨단기술 사옥에 적용

지멘스는 창립 후 170년간 ‘연구·개발을 바탕으로 한 혁신’을 기업의 모토로 삼아왔다. 지난해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 참석한 조 케저 회장은 이같은 혁신의 노력을 “우리가 디딘 모든 발자취는 가치가 있었다”는 말로 함축했다.

지멘스는 현재 어떤 발자취들을 새로 찍고 있을까. 전 세계 34만여명의 종업원들을 지휘하며 혁신을 주도하는 지멘스 본사(Headquarters)는 어떤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할까.

지난해 6월 지멘스는 뮌헨 도심에 신사옥을 오픈했다. 세계 언론에게 본사의 새 사무공간을 공개했는데 아시아에서는 본지가 유일하게 초청받아 ‘지멘스의 새 두뇌’ 신사옥을 둘러봤다.

신사옥 내 어느 사무공간에서도 중앙 뜰을 내려다 볼 수 있다. 한글 ‘표’자 모양과 비슷한 건물에는 중앙 뜰이 여러 곳에 있다. 소통을 중시하는 경영 방침이 건물 구조에 담겼다. [사진 박태희 기자]

신사옥 내 어느 사무공간에서도 중앙 뜰을 내려다 볼 수 있다. 한글 ‘표’자 모양과 비슷한 건물에는 중앙 뜰이 여러 곳에 있다. 소통을 중시하는 경영 방침이 건물 구조에 담겼다. [사진 박태희 기자]

7층 규모의 신사옥은 외벽 전체가 검푸른 유리로 덮여 있었다. 주 출입구를 지나자 하늘이 훤히 보이는 개방형 뜰로 들어서게 된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한글 ‘표’자와 유사한 모양의 본사는 사옥 내부 곳곳에 개방형 뜰을 들여놨다. 토마스 브라운 지멘스 홍보담당 이사는 “개방과 소통을 강조하는 지멘스의 정신을 전 직원이 안마당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구조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완공 행사에서 조 케저 회장도 “새 사옥은 계층적 구조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 서로 열린 대화로 소통하는 장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사옥 모든 사무공간은 4명 한 팀이 둘씩 마주보고 앉도록 배치됐다. 앉아서 장시간 일하는 게 불편할 경우엔 함께 앉는 두 사람이 의견을 모아 책상 높이를 조절한 뒤 서서 일할 수 있다. [사진 박태희 기자]

신사옥 모든 사무공간은 4명 한 팀이 둘씩 마주보고 앉도록 배치됐다. 앉아서 장시간 일하는 게 불편할 경우엔 함께 앉는 두 사람이 의견을 모아 책상 높이를 조절한 뒤 서서 일할 수 있다. [사진 박태희 기자]

2층 사무 공간에 들어가자 특이한 배치가 눈에 확 들어온다. 모든 업무용 책상이 두사람씩 마주 보도록, 즉 네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일할 수 있도록 배치됐다. 총 면적 4만5000㎡(약 1만3600여 평) 빌딩 곳곳의 사무공간에 이 원칙이 일관되게 지켜지고 있었다. 출입문에 ‘싱크 탱크(Think Tank)’라는 명패가 부착된 소회의실에 들어가보니 회의 공간도 4명이 얼굴을 맞대도록 좌석이 놓였다. 심지어 로비 곳곳의 휴식용 티테이블도 4명이 함께 하도록 좌석이 배치됐다.

토마스 브라운 이사는 이에 대해 “지멘스 신사옥에는 ‘4의 법칙’이 지배한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를 그는 “팀원간 소통이 가장 원활해져, 결과적으로 업무가 가장 민첩하게 진행되는 최적의 팀 단위가 네명”이라며 “지멘스의 오랜 경영관리 노하우가 축적된 결과로 이같은 배치가 탄생했다”고 덧붙였다. ‘업무의 범위가 4명이 맡기엔 너무 적은 분량일 경우엔 인력 낭비 아니냐’고 묻자 그는 “그 경우 4명이 할 수 있는 일이 되도록 업무를 묶거나 일의 볼륨을 키워 4인팀에 배정한다”고 말했다. 또 “프로젝트 규모가 커서 4명으로 부족할 경우엔 8명이 한 팀이 되도록 일의 범위를 조정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이어 “4인 팀제의 근간에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업무 추진의 최고 가치로 여기는 철학이 배어 있다”고 설명했다.

홍보·대관 업무 분야의 중앙 회의 공간. 2개 층을 나눠쓰지만 회의 벨이 울리면 위층 근무자들은 중앙 난간으로 모여 아래층 회의장과 소통할 수 있다. [사진 박태희 기자]

홍보·대관 업무 분야의 중앙 회의 공간. 2개 층을 나눠쓰지만 회의 벨이 울리면 위층 근무자들은 중앙 난간으로 모여 아래층 회의장과 소통할 수 있다. [사진 박태희 기자]

소통을 강조하는 정신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한 예로 홍보와 대외 업무를 총괄하는 사무실은 두개 층을 쓰는데 전체 회의를 할 때 굳이 한쪽 층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대형 회의 테이블이 놓인 공간은 위층에서도 내려다 볼 수 있게 설계됐다. 회의벨 소리가 나면 위층 근무자들은 중앙 난간으로 모이기만 하면 아래층 회의테이블 주변에 모인 것처럼 대화가 가능했다.

회의 장의 벽면도 소통을 위한 도구였다. 벽면에는 9개(3x3)의 대형 디스플레이 패널이 부착됐는데 여기에는 지멘스 관련 최신 뉴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주요 반응, 공지 사항, 주가 변동 등이 수시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페테르 제피멕 홍보실 PR담당은 “지멘스는 경영진부터 신입 사원까지 ‘항상 내가 소유하는 회사라고 생각하며 일하라 (Always act as if it were your own company)’라는 지침을 공유한다”며 “회사가 움직이는 방향을 구성원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디스플레이가 활용된다”고 말했다.

사무실 내 3단접이식 화이트 보드에는 각 팀이 맡은 업무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포스트 잇을 붙여 공유한다. [사진 박태희 기자]

사무실 내 3단접이식 화이트 보드에는 각 팀이 맡은 업무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포스트 잇을 붙여 공유한다. [사진 박태희 기자]

사무실 한 켠에 놓인 3단 접이식 화이트 보드도 소통의 중요한 도구였다. 화이트 보드를 펼치자 프로젝트 명칭과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팀의 이름이 도표로 그려져 있었는데, 각 칸마다 노랗고 붉은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포스트잇에는 해당 프로젝트에서 각 팀이 맡은 업무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가 요약돼 있었다. 주어진 업무가 끝난 팀은 ‘완료’라고 써붙이는 식이다. 페테르 제피멕은 “다른 팀의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우리팀의 진행 속도를 알리는 중요한 소통 도구”라고 설명했다.

이런 기본적인 배치와 배열 외에 신사옥에는 지멘스가 보유한 첨단 기술이 대거 장착됐다. 독일 암베르크에 있는 지멘스 공장이 ‘스마트 공장의 표본’이라고 불리듯, 지멘스는 신사옥을 ‘스마트 오피스의 표본’으로 만들기 위해 그룹 내 기술력을 총동원했다.

우선 외벽은 800장의 유리 패널을 5도 기울기로 장착했다. 빛을 가장 효율적으로 받아들이는 기울기라는 게 지멘스의 설명이다. 이 패널들은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들여 사옥 운영에 필요한 전력의 30%를 자체 충당한다. 벽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은 연간 1500㎥를 저장해 화장실과 정원관리 용수로 사용된다. 건물 벽면에는 총 70㎞ 길이의 파이프가 내장됐는데 태양열로 데운 빗물이 항상 섭씨 10도를 유지하면서 배관을 타고 돈다. 파이프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함에 따라 겨울에는 난방, 여름에는 냉방의 효과를 대신한다.

스마트 오피스 관리를 위해 출퇴근 지점 등 3만 곳에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센서를 갖췄다. 조 케저 회장은 “소통과 효율, 친환경을 추구하는 신사옥에서 지멘스는 인류를 위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뮌헨(독일)=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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