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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대선주자들 세대 교체 내걸고 뭉치나

중앙일보

입력

2017년 한국 정치에서 세대 교체가 이뤄질 수 있을까. 올해 대선을 앞두고 50대 주자들의 ‘연대 필승론’이 꿈틀대고 있다. 현재로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레이스를 이끌고 있지만 50대 주자들이 세대 교체를 원하는 국민적 열망을 하나로 모은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미 대선 출마를 선언했거나 선언할 가능성이 큰 주자들도 상당수가 50대다. 촛불 정국에서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가 치솟은 이재명(53) 성남시장, 제3지대와 거리를 두며 자강론을 펴는 안철수(55) 전 국민의당 대표 등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전 대표와 반 전 총장을 추격하고 있다. 또 대구·경북(TK)의 리더로 각광받는 김부겸(59)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유승민(59) 바른정당 의원, 도지사 경험으로 무장한 남경필(52) 경기지사·안희정(52) 충남지사·원희룡(53) 제주지사 등도 대권 도전에 나설 채비를 갖췄다. 여성 정치인으론 유일하게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심상정(58) 정의당 대표도 있다.

꿈틀대는 ‘50대 연대론’ 짚어보니

이들의 공통점은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은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에 형제·자매가 평균 네 명인 베이비붐 세대란 점이다. 유년기에 산업화를 겪고 청춘을 바쳐 민주화를 이뤄낸 지금의 50대는 정치권에서도 의미 있는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세대 교체로 한국 정치 리셋해야”

‘50대 연대론’의 물꼬를 튼 건 남경필 지사와 안희정 지사였다. 두 지사는 지난 9일 “세종시를 정치·행정 수도로 만들자”며 수도 이전을 공동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앞으로도 여야와 진보·보수를 뛰어넘어 대한민국 공익의 이름으로 협력하고 경쟁도 하겠다”고 말했다.남 지사는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젊은 대선주자들이 당을 뛰어넘어 협력하는 것 자체가 신선하고 보기 좋다는 반응이 많다”며 “수도 이전 문제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다양한 정책적 연대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출마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잠룡으로 분류되는 원희룡 제주지사도 “세대 교체를 위해선 50대 주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진영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위한 연대와 통합에 힘을 쏟아야 할 때”라고 연대론에 힘을 실었다.

이들의 실험이 정책 연대를 넘어 후보 연대로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당장 안 지사도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안 지사 측 박수현 대변인은 “50대 주자들이 당을 뛰어넘어 이른바 ‘제3지대’를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각 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50대 주자들이 선전한다면 본선에서도 자연스럽게 세대 교체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론은 조금씩 다르지만 정치권은 물론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도 세대교체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반 전 총장은 ‘정치 교체’를, 문 전 대표는 ‘정권 교체’를 구호로 내건 상황에서 세대 교체는 일종의 대항마 성격을 띤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광장의 민심이 원하는 건 시대 교체라고 보는데 정치 교체, 정권 교체란 구호는 다소 구태의연해 보인다”며 “정치권도 세대 교체를 해야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그러면서 “60대 이상 정치인들은 조건 없이 물러나고 50대가 전면에 나서 연합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50대 주자들이 서로 연대하고 경쟁하면서 지도력을 인정받는다면 정당이 그에 따라 재편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윤성이 경희대 교수도 “한국 정치도 리셋(reset)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됐고, 이를 위해서는 일단 세대 교체를 이루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며 “50대 주자 개개인이 역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수·진보의 이분법과 지역이라는 틀부터 깨야 세대 교체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은 이미 10년 전부터 세대 교체가 이뤄져 왔는데 유독 한국이 따라가지 못한 것은 당위성만 있고 정치적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젊음=새 정치’ 공식 입증이 과제

TK 정치의 새로운 아이콘인 김부겸·유승민 의원은 공통점이 많다. 경북고 1년 선후배이자 서울대 동문이다. 호적상 나이는 같지만 실제론 김 의원이 두 살 위라 사석에선 유 의원이 “형”이라고 부른다. 두 사람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불거진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도 광장 민심과 같은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말 차세대 정치 지도자를 꼽는 지역 여론조사에서 김 의원은 20.5%, 유 의원은 17.3%를 얻어 나란히 1, 2위에 올랐다. 김 의원은 대구를 기반으로 한 진보 정치인이라는 희소성을 무기로 ‘문재인 대세론’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오는 26일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유 의원은 ‘개혁보수’ 이미지로 중도 보수층을 끌어안으려 하고 있다.

지역 정가에선 두 사람이 제3지대를 구성하면 이념을 뛰어넘어 표 확장성이 상당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현재까진 진보와 보수라는 각자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새로운 정치를 선보이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유 의원은 “나이 자체보다는 어떤 정치를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50대 주자들이 새 정치를 위해 각자 노력하는 가운데 세대 교체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더욱 강해진다면 그때 가서 얼마든지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젊음을 앞세운 50대 주자들이 여야를 떠나 정책적 유사성을 가질 수는 있지만 정당 정치라는 틀을 뛰어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그런 가운데서도 이들이 시대가 바라는 차세대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면밀히 검증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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