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매거진M] 권력의 민낯을 드러낸 '더 킹' 정우성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사진=전소윤(STUDIO 706)

사진=전소윤(STUDIO 706)

정우성(43)의 영화 세계에서 악(惡)은 더 이상 그와 동떨어진 진영이 아니다. 한없이 흔들릴 것 같은, 수려하고 고독한 얼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악인의 무리에서 분열하던 ‘아수라’(2016, 김성수 감독)의 비리 형사 한도경을 연기할 때도, 정우성은 이미 지옥도의 일부가 돼 있었다. 그 위태로운 광경은, ‘더 킹’의 정치 검사 한강식을 만나 정점에 다다랐다.

[커버스토리] '더 킹' 조인성·정우성·배성우·류준열

신임 검사 박태수의 상사이자 그의 ‘롤 모델’인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전략3부 한강식 부장. 그는 노련한 독사처럼 암약하며 정치 세력을 주무르는, 간교하고 치밀한 캐릭터다. 정우성은 “권력 서열로 따지면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검찰, 초심을 잃고 힘을 남용해 온 이 조직의 생리(生理)가 한 몸에 응축된 듯한 강식에게 매료됐다. “실존하는 특정 인물을 모티브로 삼을 필요도 없었다. 이미 우리가 근현대사를 통해 봤던, ‘정치 검찰’의 표상이랄까.”

강식이 다스리는 비열한 정글로 태수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정우성이 세운 목표는 뚜렷했다. “강식을 잘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겉보기에는 멋있고 우아해 보여도, 본질을 잃은 권력의 민낯이 얼마나 초라하고 허무한지 드러내려 했다.”

의도치 않게 혼란스러운 정국에 개봉을 앞둔 ‘더 킹’이 현실과 어떤 식으로 조응하는지도 들려줬다. “행복한 시대의 영화는 순수·사랑·낭만 같은 아름다운 감정에 집중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불합리한 사회에서 불행한 시간을 보내 왔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더 킹’처럼 사회상을 투영한 영화를 보며 ‘왜?’라고 질문하게 된 것이다. 실제 역사는 이미 영화를 넘어설 만큼 파란만장하니까. ‘더 킹’이 관객으로 하여금 부당한 현실을 곱씹게 하고, 국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 한 시대를 풍자한 일종의 마당놀이처럼.”

사진=전소윤(STUDIO 706)

사진=전소윤(STUDIO 706)

“어린 시절 동시 상영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꿈을 키웠던” 소년은 ‘비트’(1997, 김성수 감독)의 방황하는 청춘을 거쳐 어느덧 40대가 됐다. “한 살 두 살 나이 먹는 게 싫지 않느냐”고 물으니, 정우성은 “나쁘지 않다”며 넉넉한 미소를 짓는다.

“한때 대중이 원하는 ‘정우성’이란 브랜드와, 배우로서 내가 열망하는 역할이 충돌하던 시기도 있었다. 아마 팬들 입장에서는 배신감마저 느꼈을지 모른다. 나이를 먹을수록 좋은 건, ‘배우 정우성’에 대한 관용의 폭이 점점 넓어지는 것 아닐까. 대중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배우로서 고민을 담아 연기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

늘 “안정적이지 않은 역할에 끌린다”는 정우성의 차기작은, 양우석 감독의 첩보 스릴러 ‘강철비’.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어제보다 나은 배우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정우성이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자신에게 던진 질문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에 잠긴 그가 씩 웃으며 답한다. “너답니?” ‘정우성답다’는 것. 우리는 ‘더 킹’을 통해 그 말의 의미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