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퉁불퉁한 세상사 맑은 언어로 곱게 다림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삶의 한 귀퉁이를 접었다 펴는 심정으로, 지나왔던 여정을 돌아보며 또한 다가올 것을 긍정하며, 이 책을 통해 나의 좌표를 찾아보았다."

중진작가 최인호(61.사진)씨가 신간 '문장(文章)'(전2권, 랜덤하우스중앙)에서 밝힌 출간의 소회다. '문장'은 나이 이순(耳順)을 넘은 그가 지난 삶을 돌아본 수상록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신춘문예에 당선, 지난 40여 년간 한국 현대문학을 지켜왔던 그가 인생을 천착하는 짧고도 속 깊은 글을 모았다.

그의 말처럼 '문장'에는 '삶의 여러 모퉁이'가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알알이 달려있다. 최씨는 가톨릭 신자이면서 불교.유교 등 타종교에도 '마음의 문'을 열어놓으며 영성(靈性)이 풍부한 글을 써온 것으로 유명하다. 신간에도 그의 면모가 십분 살아있다. 치열한 생존경쟁과 각박한 세상사를 반듯하게 다림질해주는 지혜가 담겨있다.

작가는 자신을 '조용한 노인'에 비유했다. "조용한 노인, 내가 꿈꾸는 미래의 내 모습이다. 바위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용함을 간직하고 있다. 나는 바로 그러한 조용한 바위가 되고 싶다."

삶의 저변을 '조용한 바위'처럼 떠받치는 그의 문장은 나직하면서도 무게가 넘친다. 그리스 신화부터 독일 작가 카프카까지, 가톨릭 성인 프란체스코부터 근대 한국 선불교를 일으킨 경허 선사까지 그가 마주친 숱한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깨우친 진실을 투명한 언어로 풀어놓았다.

"깊은 산 속에 있으면서도 그의 마음이 번잡하다면, 그는 비록 산 속에 있으나 실은 장터에 나와 앉아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침묵보다 더 어려운 것),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야 할 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몸과 영혼일 것이다"(성전을 허물어라), "명예와 권력은 옷에 계급장과 훈장을 붙이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허물로서 벗을 육신) 등. 밑줄치고 곱씹을, 즉 흩어진 우리 자신을 담금질할 구절이 줄줄이 이어진다. 젊은 동양화가 이보름씨의 단아한 삽화도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허무는 최씨의 글을 한층 여유롭게 끌고 간다.

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