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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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사분규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어떤 농성장에선『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적 대우를 하라』는 플래카드가 나오는가 하면 『우리가 월급 몇푼 더 받자는게 아니다. 인간적인 믿음과 대우를 받고 싶다』, 『인간적으로 대화하면 못풀 것도 없다』는 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인간적」이란 것이 오늘의 노사문제 핵심처럼 떠오른다.
일당 2천여원의 형편없는 급료와 초과시간 노동도 문제지만 인간을 인간취급하지 않는 사용자의 태도가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끼게 되는게 오늘의 노동현장이다.
근로자들이 인간대접을 하라고 들고 나오고 있는게 실상 너무나 「인간적」이다.
「파스칼」은『팡세』에서「인간은 신과 동물의 중간적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주 훨씬 전에『불경』에선 인간을 아수라와 천상의 중간에 두고 있다.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육도에서 인간은 짐승인 축생단계보다 두단계나 높다. 심지어 부처님은 인간을「부처의 성품을 타고난 이」로 존귀하게 보았다.
기독교의『성서』에서 보아도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특이한 존재다.
인간이란 말은 원래 사람의 사회란 뜻이다. 열자 주 목왕편에 처음 나온다.
「설문해자」는 사람(인)이 천지간에서 가장 귀한 자(천지지성최책자야)라고 설명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프로타고라스」는「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하면서까지 인간을 높였다.
그러니까「인간적」이란 말은 생물학적인 차원을 넘어서 가치와 정감이 있는 인간의 모양을 뜻한다.
하지만『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Menschliches Allzu menschliches)이란 저서를 쓴 철학자「니체」는 왜소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의 도덕들을 역설적으로 냉엄하게 규탄한다.
그는 다만「동물적인 본성을 극복하고 내부의 카오스를 조화시키며 자신을 스스로 끌어올려 자유를 쟁취한 인간의 정신을 찬양한다.
우리 근로자들은 노동의 현장에서 인간적인 처우를 쟁취해야 한다. 자기를 초극하여 자유를 쟁취하는 정신까지 확보한다면 더할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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