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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알파인 코스 만만찮네, 135명 중 110명 실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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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극동컵이 열린 용평 경기장. [사진 평창올림픽조직위]

극동컵이 열린 용평 경기장. [사진 평창올림픽조직위]

“넘버 8, DNF.” 알파인 스키 극동컵 대회가 열린 16일 용평 알파인 경기장에선 연거푸 ‘DNF’가 울려 퍼졌다. 참가선수들이 572m(여자부 507m)인 슬로프를 내려오다 연달아 넘어지면서 생긴 일이다. ‘DNF’는 ‘완주하지 못했다(Did Not Finish)’는 뜻. 곳곳에서 ‘아!’하는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용평서 열린 올림픽 테스트 이벤트
물 뿌려 언 코스와 촘촘한 기문 탓
13개국 선수 18.5%만 레이스 완주

이번 대회에는 한국·일본·러시아 등 13개국 선수 135명이 출전했다. 월드컵보다 등급이 낮은 대륙컵 대회지만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알파인 스키 회전·대회전 코스에서 열리는 첫 테스트 이벤트다보니 참가자가 예년의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춥지만 화창한 날씨로 인해 시작 전부터 선수들은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1·2차 레이스를 다 완주한 선수는 남녀 합쳐 18.5%에 불과했다. 남자부에선 92명 중 18명, 여자부에선 43명 중 7명이 완주했다. 한국 여자선수 완주자는 13명 중 1명 뿐이었다. 지난해 이 대회 완주율은 50%(78명 중 39명)였다.

용평 알파인 경기장은 한국 선수들은 물론, 극동컵 참가선수들이 숱하게 경험했던 코스다. 그럼에도 선수들이 완주조차 어려워한 건 설질(雪質) 때문이다. 국제스키연맹(FIS)은 이번 대회의 코스 환경을 ‘올림픽 수준’에 맞췄다. 신복수 알파인 스키대표팀 코치는 “기존 국내 대회와 달리 이번엔 슬로프에 물을 뿌렸다. 영하의 기온으로 물이 얼면서 코스가 딱딱하면서도 미끄러웠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큰 대회에서는 실제로 코스를 이렇게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알파인 대표팀의 김현태(27·울산시스키협회)는 “국내에선 이런 코스에서 시합해본 적이 없다. (정)동현이 형이 ‘아마 적응하는데 힘들 것’이라고 얘기했는게 그대로였다”고 전했다. 정동현(29)은 지난 8일 크로아티아 월드컵 회전 종목에서 14위를 하는 등 이번과 비슷한 설질의 코스를 많이 경험했다. 2011년부터 극동컵에 개근 중인 남자부 우승자 오코시 류노스케(일본·1분41초43)는 “평년보다 전체적으로 얼음판 위에서 스키를 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수준급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회에선 슬로프에 쌓인 눈의 상태가 경기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후순위로 내려오는 선수가 불리해지는데, 이를 막기 위해 미리 물을 뿌려 눈 상태를 얼음처럼 만드는 것이다. 푹신하게 쌓인 눈에서만 경기를 했던 선수들이 ‘DNF’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기문(게이트)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회전 종목은 표고차 200m 안팎의 슬로프에 설치한 60여 개의 기문 사이를 지그재그로 통과하면서 내려온다. 유연성과 순발력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알파인 국가대표 조광호(23·단국대)는 “ 이번 대회는 기문 간격이 촘촘한데다 각도까지 커서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2014 소치 겨울올림픽의 경우 남자 회전 종목 참가선수 117명 가운데 43명이 완주했다. 완주율 36.7%. 올 시즌 6차례 알파인 월드컵 남자 회전 완주율도 36.6%다. 올림픽 테스트 이벤트답게 선수들은 올림픽 무대의 높은 수준을 그대로 경험했다. 이날 한국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김현태(1분45초35·8위)는 “올림픽 코스에서 많이 타보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평창=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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