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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반기문, 마른자리만 딛고 다닌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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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자신의 대선 구상을 담은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21세기북스)를 출간한다.

문 전 대표 측은 16일 보도자료를 내고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목표로 자신의 국가비전을 밝힌 책”이라며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면에 대한 고백, 정치를 하면서 느꼈던 소회, 정치역정에서의 비사,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전후로 벌어진 한국사회에 대한 진단, 국가 대개조에 대한 향후 비전 등을 대단히 솔직하게 쏟아냈다”고 말했다. 소설가 문형렬씨가 인터뷰를 진행했고 대담집은 ‘기억’, ‘동행’, ‘광장’, ‘약속’, ‘행복’, ‘새로운 대한민국’ 등 6개 주제로 구성돼있다. ‘새로운 대한민국’에서 문 전 대표는 대통령의 리더십을 ‘신해행증(信解行證)’으로 표현했다. 가르침을 믿고(信), 가르침을 이해하며(解), 가르침을 실천하고(行), 마침내 가르침을 완성한다(證)는 뜻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가 오는 17일 출간된다.   이 책에서는 문 전 대표는 자신의 삶, 정치를 하면서 느꼈던 소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전후로 벌어진 한국사회에 대한 진단, 국가 대개조에 대한 향후 비전 등을 담았다. [뉴시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가 오는 17일 출간된다. 이 책에서는 문 전 대표는 자신의 삶, 정치를 하면서 느꼈던 소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전후로 벌어진 한국사회에 대한 진단, 국가 대개조에 대한 향후 비전 등을 담았다. [뉴시스]

문 전 대표는 책 출간에 맞춰 당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선 기자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출판사에 따르면 선주문만 3만건에 달한다고 한다. 문 전 대표가 지난 대선에 앞서 2011년 6월에 출간한 『문재인의 운명』도 30만부 가까이 판매됐다. 독자 4000여명을 초청해 오는 4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북콘서트도 개최할 예정이다. 대담집은 17일 오후부터 서점에서 구입 가능하다.

다음은 출판사가 공개한 본문의 일부.

출판사가 공개한 본문의 일부.

-정계에 입문하면서 만났던 김대중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김근태 의원에 대한 남모르는 기억이 많을 것 같은데요.
“김대중 대통령은 <사상계>라는 잡지를 통해 처음 만났습니다. 1960년대 당시 노동문제연구소 소장으로서 노동문제에 관한 글을 쓰셨죠. 그 시기에 노동문제에 관해 지금의 ‘노동삼권 보장’ 같은 시각을 지녔다는 건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굉장히 진보적이었고 지금의 노사정위원회, 노사정 대타협에 대한 개념도 이미 그때부터 갖고 계셨어요. 아마 대통령이 되신 뒤에 만든 노사정위원회도 그때부터 다듬어온 결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여러 번 뵙고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이 시대에 만난 정치인 중 가장 진보적인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진보정당 분들도 있지만 그분들은 현실에 뿌리내리지 않은 관념적인 진보인 경우가 많은데, 김대중 대통령은 현실에 뿌리내린 가장 진보적인 정치인이셨죠. 우리 시대의 정치지형이 그분을 따라가지 못해 자신의 이상을 다 실천하거나 구현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 말씀을 듣다 보면, 그분은 정치가이기 전에 사상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이런 부분입니다. 우리 역사의 어떤 시기에 서양은, 중국은, 일본은 어떤 상황이었고 어땠는지 연대기적으로 쭉 관통하는 거예요. 보통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 힘든데 말이죠. 예를 들어 다산 선생이 활동하던 시기에 유럽과 중국 등 외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어땠는지 전부 꿰뚫어 말씀하십니다. 그 이야기의 도도함에 늘 감탄하곤 했죠.

김영삼 대통령도 여러 번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3당 합당 전, 민주화운동을 이끌고 특히 영남지역에서는 상징적인 분이었죠. 그분은 늘 경청하는 분이었습니다. 제게는 개인적으로 같은 거제 동향 선배기도 하고, 경남중고등학교 선배기도 합니다. 저보다 22년 선배시죠. 처음 만났을 때가 야당 총재였을 땐데, 그때 우리 연배는 사회초년병으로 시민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을 막 시작하는 단계였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셨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한 시간 만나면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2, 3분이라면, 김영삼 대통령은 만날 때마다 대체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스스로는 말을 적게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긴 시간의 모습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110~112쪽)

-양산 집에 있는 감나무가 궁금합니다. 양산 집 감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으면 자른다고 해서 내내 감나무에게 말을 걸었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거든요. 정말 감나무가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을까요?
“그럼요. 아주 오래전에 제가 감나무를 사다가 집 마당에 심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심은 지 3년이 되도록 감이 한 알도 맺지 못하는 거예요. 감나무가 좀 허약하고 건강하질 못해 잎에 하얀 반점이 생기고 통 열매를 맺지 못했죠. 아내는 감나무가 비실비실하고 나무 밑의 화초들이 자라지 못한다며 자꾸 베어버리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 해만 더, 한 해만 더 하다가 제가 물 주고 거름 주고 지극정성으로 돌보면서 감나무한테 말을 걸었어요. 너 이번에도 감을 못 맺으면 우리 마누라가 널 베어버리란다, 빨리 건강해져서 올핸 꼭 감이 열리도록 해라, 그랬죠. (중략) 그렇게 마음으로 격려하고 응원을 해주면 언젠가는 그 목소리가 들리죠. 저도 열매를 맺지 않는 감나무한테 중얼중얼 말을 걸고 둥치를 쓰다듬었어요. 그러니까 3년째 되던 해 정말 열매가 열리더라고요.” (135~136쪽)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담배를 끊었는데 무슨 금연 비결이 있습니까?
“담배를 제대로 핀 건 고3 때부터였죠. 1970년부터니까 35년 정도 피웠네요. 그 무렵엔 고3쯤 되면 흔히 담배를 다 피웠어요. 물론 그때도 고약한 선생님이 때때로 가방을 뒤져서 담배를 찾아내가지고 벌을 주는 일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그냥 용인하는 분위기였죠. 2교시 마치면 우르르 학교 뒷산에 올라가 담배를 피우고 내려오고, 그다음 점심시간에 가서 또 피우고, 두 시간마다 한 번씩은 피웠던 것 같아요. 막걸리도 허용하는 분위기였죠. 당시엔 고등학생이면 이미 어른 대접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래 담배를 피워왔는데 히말라야에서 한 번에 딱 끊어버렸어요. 제가 참여정부 민정수석을 그만둔 다음에 히말라야로 떠났습니다. 히말라야 대자연의 산길을 걷는데 담배가 저절로 끊어지더라고요. 왜 진작 못 끊었나 싶기도 했죠.” (271~273쪽)

-지금 우리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행복은 무엇일까요?
“공정한 세상 아니겠습니까? 적더라도 함께 나누는 세상, 배고프더라도 함께 먹는 세상, 그리고 억울한 사람이 없고 안전한 세상을 바라죠. 중년세대는 제게 말씀하십니다. 자식이 행복해야 부모가 행복하다고. 자식이 정말로 노력했는데도 성공은커녕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밀려나고, 누군가는 또 아무런 노력 없이 부모 덕에 모든 걸 얻고, 이런 불평등과 불공정을 보고 겪는 게 국민들의 불행이겠죠. 세상이 공평하다고 느낀다면 함께 고통을 겪고 극복해나갈 수 있습니다.” (274쪽)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분들에 대한 인물평을 듣고 싶습니다.
“우선 안희정 지사는 젊고 스케일이 아주 큽니다. 포용력이 있죠. 앞으로 훨씬 더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박원순 시장은 따뜻하고 헌신적이죠. 이재명 시장은 선명하고 돌파력이 있습니다. 김부겸 의원은 뚝심이 있어요. 말이 굉장히 구수하고 입담이 좋아서 소통능력도 좋지요.” (314~315쪽)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유엔사무총장을 지냈으니 그분은 외교관으로 유능하겠죠. 다른 면은 제가 본 적이 없어서 알 수는 없고요. 그동안 기득권층의 특권을 누려왔던 분입니다. 지금 우리 국민이 요구하는 건 구시대 청산,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 등 새로운 변화인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그리 절박한 마음은 없으리라고 판단합니다. (중략) 어쨌든 그동안 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쪽에 서본 적은 없다, 그런 노력을 해본 적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통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더 곪게 되죠. 마른자리만 딛고 다닌 사람은 국민의 슬픔과 고통이 무엇인지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315~316쪽)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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