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일자리부터 늘려야" 김근태 "국민적 합의 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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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건 열린우리당 의장(右)이 20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비상집행위원회의에서 원혜영 원내대표대행(中)과 이호웅 비상집행위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증세 정책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연합뉴스]

열린우리당 의장 경선 후보들 앞에 큰 숙제가 떨어졌다. 이른바 세금 논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18일 신년 연설에서 양극화 해소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복지 예산의 증가를 말했다. "정치권과 경제계, 언론과 학계가 책임 있는 자세로 대안을 마련하는 데 지혜를 모아달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대안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권 내에서는 늘어나게 될 복지 예산 수요에 맞추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문제는 증세가 국민의 부담을 수반하는 만큼 표의 논리를 우선하는 정치권으로선 기피 대상이란 점이다. 이렇다 보니 열린우리당 경선 후보들부터 당위와 현실 앞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동영 후보는 20일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 마련 대책에 대해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방안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대책을 내놓겠다"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세금 증수에 대해서도 정 후보 측은 "근본적인 해법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국민의 담세 능력부터 높이는 게 우선"이라고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신중하긴 김근태 후보도 마찬가지다. 김 후보는 "재원 조달 문제는 대통령이 일정 시점이 되면 어떤 제안이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먼저 광범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실현될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김혁규.김부겸.이종걸.조배숙 후보 등도 새로운 세목 신설 등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증세보다는 조세제도 개편 등을 통해 숨겨진 세원을 발굴하는 데 더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혁규 후보의 대변인인 김종률 의원은 "감면 등 비과세 혜택을 줄이고 소득공제 축소 등과 각종 과세 영역의 루프홀(구멍)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수십조원의 세수 증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면서 "증세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여권 내에선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과 증세 정책의 도입 등이 5월 지방선거는 물론이고 차기 대선의 주요 논쟁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 때문에 당 경선 후보들의 신중론은 당.청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청와대 만찬 당시 탈당 가능성을 말하며 "대통령은 20 ~ 30년 후를 내다봐야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있는 당은 입장이 다를 수 있다"고 한 건 이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경선 후보들이 보이고 있는 당장의 반응을 감안할 때 증세론이 계속 불붙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방선거.대선 등을 거치면서 증세 대책이 단계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돼 세금 논쟁은 선거 구도를 결정하는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 후보자는 증세의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 김근태 후보는 "정부가 먼저 탈세를 막고 행정 지출을 절감하는 등 세원을 확대하는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두관 후보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 마련 책임을 정치권이 방기해선 안 된다"고 했다.

박승희.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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