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사이트] 다보스포럼, 세계화 리더인가 ‘가진 자들 리그’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세계화의 기치 아래 상품·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을 끌어내는 역할을 하는 장.”(이매뉴얼 월러스틴 『근대세계체제론』 저자)

내일 개막…‘소통·책임의 리더십’ 주제
46년간 세계 협력의 장으로 큰 역할
냉전시대 외교관 물밑접촉 통로
베를린장벽 붕괴 결정적 계기 마련
21세기 들어 양극화·테러엔 무기력
기업회비 7억, 5년 새 매출 800억 늘어
“돈벌이 급급” 지나친 상업화 도마에

“돈을 금·채권·원유로 옮길 생각만 가득한 앙시앵 레짐(구체제)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모임.”(폴 케네디 미국 예일대 교수)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엇갈린다. 올해 47회째를 맞은 다보스포럼이 17일(현지시간)부터 나흘간 열린다. 이번엔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을 주제로 전 세계에서 일고 있는 포퓰리즘과 고립주의, 이로 인한 여러 불확실성의 해소 방안을 도마에 올린다.

다보스포럼은 유럽 기업인들이 휴양지에 모여 미국 신경영 기법을 배우고 인맥과 정보를 쌓자는 취지로 1971년 시작됐다. 출범 당시 이름은 유럽경영포럼(EMF). 행사가 열리는 스위스 다보스는 『셜록 홈스』의 저자 코난 도일이 아내의 결핵 치료를 위해 10년 이상 머물렀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토마스 만의 『마(魔)의 산(magic mountain)』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80년 오일쇼크 속에 포럼에 참석한 아흐메드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여부를 언론에 흘리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다보스포럼의 위상이 커지고 참석을 희망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87년 WEF로 명칭이 바뀌었고 전 세계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동서 화합을 이끈 고르바초프(왼쪽)가 1987년 12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손 흔드는 모습. [중앙포토]

동서 화합을 이끈 고르바초프(왼쪽)가 1987년 12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손 흔드는 모습. [중앙포토]

“고르바초프에게 기회를 줍시다(Give Gorbachev a chance).”

87년 다보스포럼 연단에 오른 한스디트리히 겐셔 독일 외교장관의 한 마디는 같은 해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장벽을 허물어 버리자(Tear down this wall)”는 제안으로 이어졌다. 베를린에서 레이건을 만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이에 합의했고,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은 89년 11월 9일 무너졌다. 다보스포럼이 냉전 종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셈이다. 냉전 이후 찾아온 평화·협력의 시대는 다보스포럼이 새 세계질서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미국의 패권과 이슬람 원리주의의 충돌로 발생한 비극이다. [중앙포토]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미국의 패권과 이슬람 원리주의의 충돌로 발생한 비극이다. [중앙포토]

88년에는 석유 시추 문제로 갈등을 빚던 그리스와 터키의 ‘다보스 선언’을 이끌어 전쟁 위협을 막았고, 92년에는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교장관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함께하는 화해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손을 잡은 페레스 장관과 아라파트 의장은 94년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처럼 다보스포럼은 세계질서의 정립과 화해·협력의 장으로 매년 세계인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는다. 포럼의 주제와 참석자의 발언, 회의 내용, 보고서 내용은 국가 정책과 기업 경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줄을 서고 아침 산책에서 빌 게이츠를 만날 수 있다 는 점은 이 포럼의 강력한 마케팅 포인트다.

2008년 월가의 탐욕에 분노해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 나선 미국 시민들. [뉴시스]

2008년 월가의 탐욕에 분노해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 나선 미국 시민들. [뉴시스]

글로벌 경영자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항상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명 경영자들이 모처럼 경계를 풀 수 있는 자리다. 이곳에서 인맥을 형성하고 새로운 사업을 발굴한다. 이런 식으로 ‘포럼 비즈니스’의 장을 마련한 것은 다보스포럼이 처음이다. 경영자와 학계·정계 인사들이 스스럼없이 토론한다. 이러니 각국 정상이 참여하는 외교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30만 명의 사망자를 낸 2014년 시리아 내전을 피해 어린이가 철조망을 넘고 있다. [뉴시스]

30만 명의 사망자를 낸 2014년 시리아 내전을 피해 어린이가 철조망을 넘고 있다. [뉴시스]

다보스포럼을 비즈니스를 넘어 ‘포럼 외교’로 성장시킨 건 특히 냉전과 세계화의 흐름이었다. 비밀 외교가 판치던 시절 다보스포럼은 외교관들의 물밑 접촉과 친분 형성의 중요한 통로였다. 포럼을 설립한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은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과 에드워드 히스 전 영국 총리의 도움을 받아 다보스포럼이 성장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요즘 다보스포럼을 바라보는 여론이 곱지만은 않다. 양극화·빈곤·고립주의 확산과 같은 전 세계의 당면한 과제를 해결할 능력과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세계화 등 항상 비슷한 주제를 두고 논할 뿐 문제 해결의 리더십을 보여주거나 대타협을 끌어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포럼이 끝난 직후 “다보스포럼이 진부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포럼 주제는 대개 회의 첫날에 망각해 버리고 만다”는 냉소적인 칼럼을 싣기도 했다. 다보스포럼을 견제하기 위해 2001년 출범한 세계사회포럼(WSF)은 “세계적 빈곤에 눈감는 이기적인 집단이며 가진 자들의 그들만의 리그”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백인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2016년 미국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뉴시스]

백인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2016년 미국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뉴시스]

실제 다보스포럼은 신자유주의가 절정으로 치닫던 2000년대 초 자유무역으로 인한 개발도상국의 저성장 굴레와 원조 문제를 살피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도 받았다. FT는 2010년 그리스 재정 위기와 중동의 민주화 흐름에 대처하지 못하는 다보스포럼을 “글로벌 엘리트들의 답답한 모임”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비영리단체이면서도 상업주의에 물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민간 기구인 만큼 상업화 자체를 탓하기는 어렵지만 도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포럼이 고급 로비스트의 한철 장사로 전락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실제 인수합병(M&A)과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려는 기업의 참가가 늘면서 다보스포럼의 매출도 크게 증가했다. 2011년 수익 1억5760만 스위스프랑(약 1840억원)에서 2016년(2015년 7월~2016년 6월) 2억2834만 스위스프랑(약 2666억원)으로 44.9%나 뛰었다. 기업으로부터 받는 파트너십 수입은 7695만 스위스프랑에서 1억4336만 스위스프랑으로 두 배 가까이 불었다. 다보스포럼은 참석 자격을 주는 전략적 파트너로부터 60만 스위스프랑(약 7억원)의 회비를 받고 있다. 올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하는 등 다보스포럼이 아시아로 보폭을 넓히는 것도 ‘비즈니스 확대’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대중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2000년대 중반부터 할리우드 스타를 대거 참석시키는 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슈바프 회장은 올해 다보스포럼을 앞두고 “5성급 호텔, 샴페인 모임, 피아노 바 속에서 대중의 핵심 관심에 대한 가시적인 결과를 만들어 사회에 봉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보스포럼을 대체할 상품이 있을까. CNBC는 젊은 층에 호소력이 강한 국제 강연행사인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를 대안으로 꼽기도 했다. 다만 세계화는 다보스포럼의 고유 영역이라며 대체불가 의견도 덧붙였다. 각자도생의 시대, 세계화의 바퀴가 넘어지지 않도록 페달을 굴려주는 다보스포럼의 역할은 부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보스포럼의 올해 화두인 ‘리더십’ 역시 국수주의를 경계하고 이상주의적 국제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