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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정부 비용 줄여라…트럼프에 직언한 IT 거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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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하선영 산업부 기자

하선영
산업부 기자

‘우리가 원하는 정부(The Government We Need)’.

‘우리가 원하는 정부’ 보고서 공개
사기·부당거래방지 등 8가지 요구
‘정부는 갑, 기업은 을’ 한국과 대조

팀 쿡(애플), 래리 페이지(구글), 제프 베조스(아마존), 사티야 나델라(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을 대표하는 IT 기업 최고경영자(CEO) 13명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에게 직접 건넸다는 보고서는 제목부터 직설적이다.

미국 테크놀로지 CEO 협회(The Technology CEO Council)는 약 한 달 전 트럼프에게 전달했다는 32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12일(현지시간) 공개했다. “차기 정부는 1조 달러(약 1175조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10개년 계획을 당장 시행해야 한다”고 시작하는 이 보고서는 새 정부를 향한 기업들의 요구 사항과 조언만으로도 한가득이다.

보고서는 “모든 정부 부처들은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공공 서비스의 질은 향상시켜야 하는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5870억 달러(약 690조원)에 달했던 정부 적자를 줄이라는 얘기다. 그 방안으로 ▶정부 조달 물자에 대한 공급 체인 개선(5000억 달러·587조원) ▶사기 및 부당한 거래 방지(2700억 달러·317조원) ▶빅데이터 분석 및 인지 컴퓨팅(2050억 달러·240조원) ▶IT 현대화(1100억 달러·129조원) 등 8가지를 제시하며, 이를 통해 1조 달러를 아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IT 혁신’의 실천을 위해 기업들과 적극적으로 손잡아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뉴욕 주정부가 IBM의 빅데이터 분석과 알고리즘으로 부정 세금 환급 케이스를 잡아내 12억 달러(1조4000억원)를 아낀 것을 예로 들었다. 보고서는 이밖에도 ▶주요 결정을 내릴 때 공기업 데이터뿐 아니라 사기업의 공개된 데이터도 적극 활용할 것 ▶기술과 관련한 결정을 내릴 때는 기업과도 충분히 상의할 것 ▶사이버보안과 클라우드 컴퓨팅에 투자를 아끼지 말 것 등을 조언했다.

미국 IT기업 CEO들은 지난달 14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과 미국 뉴욕에서 만났다. 이때 전달한 여러 요구사항을 담은 보고서가 최근 공개됐다. 왼쪽부터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COO,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인, 트럼프,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 애플 CEO 팀 쿡. [AP=뉴시스]

미국 IT기업 CEO들은 지난달 14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과 미국 뉴욕에서 만났다. 이때 전달한 여러 요구사항을 담은 보고서가 최근 공개됐다. 왼쪽부터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COO,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인, 트럼프,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 애플 CEO 팀 쿡. [AP=뉴시스]

이들 테크 기업 CEO들은 한 달 전 트럼프의 뉴욕 사무실로 몰려와 90분 동안 트럼프 당선인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인을 압박했다. 대다수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원했기 때문에 만남 자체가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자는 다른 데선 도도하고, 무례하기까지 했지만 이들과의 만남에선 자기를 굽혔다.

트럼프는 CEO들에게 “여러분들은 놀라운 기술 혁신을 계속 일으켜야 한다. 문제가 있으면 내게 바로 전화하라”며 적극적인 소통과 지원을 약속했다. 기업들도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활성화 등을 트럼프에 약속했다. 선거 과정에서 불편했던 건 옛날 얘기고, 이젠 경제 살리기에 함께 나서자는 데 뜻을 같이 한 것이다.

기업은 정부에 당당히 요구하고, 정부는 그걸 경청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모습은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정부는 갑, 기업은 을’로 인식하는 한국에서 기업이 정부에게 미국처럼 이런저런 주문 사항을 얘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4차 산업혁명에서는 기술이 워낙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정부 주도로는 이 흐름을 따라갈 수도 없다. 우리 기업들도 정부가 규제를 풀지 않는다고 불평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무엇이 필요한지를 더 적극적으로 정부에 주문해야 한다. 해체 위기에 놓인 전경련이든 ‘인터넷기업의 전경련’이라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든 누구라도 좋다. 정부도 기업들의 요구에 좀 더 귀기울이고 각종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는 등 기업들을 지원하는 데 힘써야 한다. ‘벚꽃 대선’이 논의되고 있다. 우리 IT 기업들도 ‘우리가 원하는 정부’란 보고서를 들고 대통령 당선자와 담판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하선영 산업부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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