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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들 너도나도 “재벌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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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차기 대선주자들이 모두 ‘경제 좌클릭’을 외치고 있다. 지난 2012년 대선의 데자뷔다. 당시 박근혜 -문재인 후보 모두 재벌 개혁을 포함한 경제민주화를 대선 핵심 공약으로 전진배치했다. 5년 만에 열릴 2017년 대선에서도 다시 경제민주화 논쟁이 점화할 조짐이다. 사회 저변의 표심을 의식한 측면이 크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에서 이런 조짐이 보였다. 보수 진영 후보로 꼽혀 온 반 전 총장은 지난 12일 중앙일보와의 기내 인터뷰에서 “재벌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재벌이 모든 걸 통제하니 중소기업이 살아날 길이 없다”면서 대기업과 하청업체 간 ‘동일노동 동일임금’까지 거론했다. 특히 반 전 총장은 단순히 재벌이 문제라는 인식에 그치지 않고 “불공정·불공평한 사회”의 원인으로 재벌을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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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0일 재벌 개혁안을 내놓고 4대 재벌(삼성·현대차·SK·LG)을 타깃으로 지목했다. 기존에 논의하지 않던 내용도 포함했다. 대표적인 게 노동자가 추천한 이사가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노동이사제’였다. 문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노동이사제 도입은 문 전 대표의 신념에 가까운 사안”이라 고 말했다.

기업인 시절부터 한국 경제를 ‘대기업 동물원’으로 비유해 온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나 현 상황을 ‘정글경제’로 규정하고 있는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도 각론에선 차이가 있지만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준비 또는 제시하고 있고, 민주당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은 아예 ‘재벌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야권선 근로자 경영 참여 등 연일 강경책 쏟아내
반기문 가세, 안철수·유승민도 핵심공약으로 준비
“일자리·성장 비전 없어…국내기업 역차별 우려도”

대선주자들의 경제 좌클릭은 표심과 촛불민심을 동시에 겨냥한 것이다. 재계는 긴장하고 있다. 기업 활동이 크게 제약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 경영권 방어 수단이 외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재벌 개혁 만 강조하면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며 “결국 기업가정신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려면 합리적인 규제개혁도 동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 논의가 지난 대선 때와 큰 차이가 없다”며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성장담론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미국에선 디나 파월 골드만삭스 재단 이사장이 도널드 트럼프 차기 행정부에서 기업가정신 확산을 담당하는 백악관 선임고문(신설)으로 지명됐다.

노동이사제, 부당이득 환수…지난 대선보다 수위 높아져

선거 뒤엔 경제민주화 공약 안 지켜
법인세 인상, 공정위 고발권 폐지 등
빠르면 2월 임시국회서 입법 논의

최근 정치권에 나오는 재벌 개혁안이나 경제민주화 정책은 2012년 대선 때보다 수위가 더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경제민주화를 새누리당 정강·정책의 맨 앞쪽에 넣었고 ▶징벌적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등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걸었다. 문 전 대표는 당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기업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을 공약했다. 이번에는 4대 재벌에 집중하면서 노동이사제 도입까지 주장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논의는 대선 정국을 뜨겁게 달궜지만 박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상당수 공약은 이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르면 2월 임시국회에서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다. 재벌 개혁에 소극적이던 새누리당이 원내 제1당일 때와는 달리 지금은 의회 지형이 변했다. 민주당(121석)과 국민의당(38석)뿐 아니라 새누리당에서 분당한 바른정당(30석)까지 논의에 적극적일 가능성이 크다. 바른정당은 정강·정책에 ‘재벌 개혁’을 명시할 예정이다. 반 전 총장까지 재벌 개혁을 들고 나왔기 때문에 충청권 새누리당 의원 등이 일부 탈당해 가세하면 300명 의원 중 200명을 훌쩍 넘는 의원이 직간접으로 재벌 개혁에 찬성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재벌 문제와 맞물려 거론돼 온 법인세 인상이나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등이 1차적 입법 대상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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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개혁을 강조하는 반 전 총장이나 문 전 대표는 모두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와의 연대를 의식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반 전 총장은 기내 인터뷰에서 “김종인 전 대표를 만나겠다”고 말한 뒤 재벌 개혁을 강조했다. 문 전 대표도 자신의 재벌 개혁안 속에 김 전 대표가 대표 발의한 상법 개정안 내용을 상당 부분 포함시켰다.

소득 양극화, 청년실업, 장기침체 등에 따른 사회 전반적인 불만과 불안감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제12차 주말 촛불집회의 초점도 재벌 개혁이다.

허진·홍상지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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