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노사협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6·29 선언이후 민주화의 물결과 더불어 그동안 막혔던 다양한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최근 특히 근로자들의 목소리와 행동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임금인상, 유급휴가제 실시, 상여금 지급, 어용노조 퇴진등 여러 요구조건을 내건 집단시위가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한달동안에만 노사분규는 71건이나 발생, 작년 같은 기간의 두배를 넘고 있다. 현대중공업에 우리나라 최대의 단위노조가 탄생, 어용노조 퇴진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농성사태가 발생했는가하면 국제상사에서는 사원들끼리 충돌하는 투석전까지 있었다.
이러한 최근의 동향은 노사문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노조설립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노사관계의 정상화를 위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나 과도한 요구나 과격한 집단행동은 오히려 우리의 민주화 대행진에 역작용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러를 낳고 있기도 하다.
노사관계의 당사자인 사용자·근로자, 그리고 정부는 여건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노사관계의 안정과 산업민주주의의 확립에 지혜를 모아야 할 중대한 시점에 놓여있다고 아니 할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지난 20여년간 연평균 8.3%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한강변의 기적을 이룩했는데 그 저변에는 정부와 경영자의 추진력은 물론이고 근로자들의 인내와 노력이 밑받침이 되었다.
그동안 노사관계에 영향을 주는 사회 경제적 여건은 크게 변화했다.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의 확대와 후발공업국의 추격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는 생산성 제고를 더욱 필요로 하고 있으며 기업의 대규모화에 따라 노사간 원만한 의사소통의 창구가 더욱 절실하게 되었다.
또 소득수준과 교육수준의 향상에 따른 근로자 의식구조의 변화는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노사관계의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6·29선언이 없었다하더라도 이러한 여건의 변화로 인하여 새로운 노사관계의 정립은 불가피한 추세로 되었다고 할 수있다.
그것은 민주적인 노사관계를 기본으로 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자유기업주의의 장점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노동관계법의 개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믿는다.
선언적인 의미보다는 실질적으로 산업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는 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외국의 노사관계제도가 모범적이라고 하여 그대로 수입·모방해서는 안될 일이며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여러 여건에 맞는 한국특유의 노사관계를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남북분단으로 인한 안보문제와 경제성장의 필요성을 내세워 노사분규를 일종의 사회악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음도 사실이다.
노사관계는 남을 위하여 전적으로 자기를 희생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노사관계는 본질적으로 대립과 갈등의 측면이 있게 마련이며 그렇기 때문에 교섭하고 타협할 수밖에 없다. 대립과 갈등을 질서있게 해소하는 방법은 바로 노조라는 조직을 통하여 순리적으로 교섭을 하는 일이다. 여기에 단체교섭의 기능을 활성화시켜야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단체교섭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노조를 육성하여 노사대등성을 유지해 주도록 해야 한다. 교섭도 기업별로만 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지역별 혹은 산업별로 노사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노사분규조정절차도 합리화해야 한다.
노사분규의 조정은 원칙적으로 노사자율에 맡겨 자율조정의 관행을 축적하게 해야 한다.
노사협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노사협조는 노사간 대등성과 자율성이 유지되었을 때 이루어진다는 일반원칙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제도가 아무리 완벽하다해도 문제는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에 달려있다.
경영자는 근로자들에 대해 전인격적 배려와 책임감을 가져야하며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모든 요구가 한꺼번에 충족되기는 어렵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해야한다고 믿는다. 자신이 속해 있는 기업의 존속과 성장이 또한 자신의 생존과 이해관계에 직결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