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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흐름엔 구김없으나 생동감 결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우리 말, 우리 글, 우리 얼로 시를 쓰면서 우리의 시(시조)를 쓸 줄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의 것이라고 해서 시조만 고집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아예 남의것(자유시)만 알고 시조를 모르는 일은 더 큰일이다.
『유엔 묘지에서』는 3수까지 끌고 갔으면서도 흐름에 구김살이 없이 고루 잘 퍼졌다. 그러나 표현에 있어서 생동감을 얻지 못해서 단 수에 비해 시조의 맛이 떨어진다. 연작으로 끌고 나가더라도 한수 한수가 독립된 시가 되어야함을 새길 일이다.
『직녀도』는 지금은 그 모습을 보기 힘든, 우리네 어머니·할머니의 길쌈에 삶을 얹은 작품이다. 초장의 <베틀에 올라앉아>는 말의 낭비이므로 달리 할말을 아껴서 써야했다.
『대금』은 지나치게 예스러운 것이 흠이다. 풍운·광음·중천등의 낱말은 현대시에는 좀처럼 쓰기 어려운 죽은 낱말이다. 낡은 언어를 되짚어 쓸 때는 앞뒤의 말로 빛을 닦아주거나 그만한 까닭을 지녀야 한다. <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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