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잇단 노동쟁의로 경제에 주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노사분규 실태와 해결방향>
어용노조 퇴진·처우개선등을 요구하는 근로자들의 파업·농성·과격한 시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지난달 27일 이후 부산의 대한조선공사·국제상사, 울산의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소·동양나일론·동양폴리에스터·태광산업울산공장, 광주의 일성섬유, 여천의 호남에틸렌주, 안양의 한국제지등 10여개 대기업을 비롯 전국2O여 사업장서 근로자들의 다양한 요구와 누적된 불만이 집단행동으로 연쇄폭발했다.
지난달 28일부터 4일째 계속됐던 현대중공업 근로자 1만여명의 파업농성과 국제상사·대한조선공사·현대미포조선소의 분규는 노사간 합의가 이루어져 일단락 됐으나 집단행동의 불씨는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주요 노사분규 회사의 분규현황과 전망·경제손실등을 알아본다.
◇실태 ▲현대중공업=이 회사의 직접적인 노사분규 불씨는 어용노조시비. 지난달 7월21일 권오성노조위원장, 홍사기노조부위원장, 김선웅사무국장등 전노사협의회 소속 근로자 대표 3명등 50여명이 노조설립을 울산시청에 신고.
그러나 지난달22일 하오 현대중공업산하 각사업본부별로 노조결성을 기도했던 생산직근로자13명이 주동이 되어 「민주노조개편위원회」를 결성, 7월23일 상오 「민노위」측에서 「어용노조규탄하라」는 유인물을 회사내에 살포하며 4일간의 분규가 시작됐다.
회사측은 근로자들의 농성이 장기화·과격화되자 30일 밤12시쯤 무기한 휴업을 결정.
그러나 이혜기노동부장관등 정부관계자들이 정주영명예회장에게 휴업철회를 종용, 회사측은 이에따라 재협상을 시도, 양측은 31일 상오10시부터 하오4시까지 마라톤협상을 벌였으며 이 협상에서 노사양측은 「고과제는 즉시폐지하고 임금인상문제는 신설되는 노조와의 협상을 통해 추후결정하자」는데 합의, 하오4시30분 농성근로자들은 자진해산.
▲현대미포조선소=이 회사 노사분규의 불씨는 회사간부의 노조설립 신고서류 탈취사건에서 비롯됐다.
7월15일 김명환·배병덕·정낙철·오경환씨등 근로자 50여명이 노조를 설립.
노조측은 「유급휴가인정」「하기보너스 50%추가지급」「식사처우개선」등 3개항을 요구했으며 회사측이 유급휴가·식사 처우개선을 수락했으나 보너스 문제는 차후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취하자 28일 낮12시 근로자 1천명이 운동장에 집결, 「보너스지급」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 그러나 1일 상오 노사합의를 보아 정상조업에 들어갔다.
▲현대자동차=지난달24일하오3시 정성규씨등 근로자 30명이 노조설립총회를 연뒤 노조설립신고서를 울산시청에 접수하자 25일 정오 반대파근로자 5백여명이 이를 어용노조로 규정, 퇴진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분규가 시작됐다. 이에 관계당국의 중재로 6시간의 노사협의 끝에 △새 집행부 구성 △농성참가자 신분보장 및 근무시간 인정등 5개항에 합의했으나 농성근로자들은 이를 거부, 공장내의 차량 6대, 유리창 10장등을 부수며 농성을 계속.
노사관계자들은 다시 협의를 재개, △현노조집행부 퇴진보장 △한달이내 새집행부 구성 약속 △농성참가자에 대한 책임불문등 7개항에 합의, 근로자들이 이를 받아들여 26일0시40분 전원해산했다.
회사측은 집단농성사태로 조업에 차질이 오자 29일 근로자전원에 대한 하기휴가를 실시, 냉각기를 갖고있는 상태.
▲동양나일론·폴리에스터=8백여노조원들은 27일상오7시부터 「어용노조퇴진」「임금 30%재인상」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계속하다 28일 하오8시 △노동조합장및 회사대표 허수아비 화형식 △종합부(나일론원료 합성기계) 가동중지 △본관파괴 △효성중공업이 건설중인 공장파괴등 5단계 투쟁계획 수립.
노조원들은 같은날 하오9시쯤 회사대표 허수아비 화형식을 갖고 2천여 노조원중 4백여명이 체육관에서 철야농성끝에 29일 상오 어용노조퇴진은 타결을 보았으나 임금인상조정은 회사측의 불응으로 난항을 계속.
같은날 하오 노사협상을 통해 △임금12% 추가인상 △유급휴가인정 △민주노조 설립때까지 기존노조와의 협의중지 △추석 및 하기휴가비지급등 15개항에 합의하자 근로자들은 농성을 풀고 귀가, 30일부터 정상조업중이다.
◇전망=현대중공업이 끈질긴 노사간 마라톤협의를 통해 31일 극적인 타결을 이룬데 이어 국제상사와 조선공사·현대미포조선소가 역시 농성을 풀긴했다.
그러나 ▲임금등 근로조건 및 작업환경에 대한 근로자들의 누적된 불만 ▲노동조합 신설·격증에 따른 사용주와의 마찰 ▲민주화 분위기에 편승한 집단행동 지상주의 ▲6·29선언 이후 공권력 개입 제한등 여건으로 근로자들의 집단행동은 불씨를 안은채 장기화될 전망이다.
또 근로자들의 요구사항도 당초의 「어용노조 퇴진」에서 ▲임금인상 ▲고과평점에 따른 보너스차등 지급 철폐 ▲퇴직금 누진제 적용 ▲기업공개등 다양해지고 있으며 이 같은 요구는 점차 전업체로 확산될 기미를 보이고있다.
현대그룹은, 울산공단내에 17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는데 현대엔진공업 근로자들이 지난달4일 최초로 노조를 결성한 이후 1일 현재 산하 5개 주력기업에 노조가 결성됐고 이 같은 노조, 결성운동은 그룹 전체로 확산될 전망.
이번 노사분규에서 드러난 근로자들의 요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임금인상이다. 그중에는 25∼35%까지 한꺼번에 임금을 올려달라는 주장도 적지않았다.
적절한 임금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꺼번에 이처럼 임금을 올려주고도 과연 치열한 국제가격경쟁에서 이겨나갈 수 있을지 기업측은 걱정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한 기업이 임금을 올리는 경우 같은 업종의 다른 기업에도 파급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그렇게될 경우 그 업종전체가 경쟁력을 잃게되는 것이다.
더우기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의 경우 더 큰 어려움을 겪게되며 문을 닫는 사태까지 가져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뿐만아니라 과격시위와 끊임없는 노사관계의 불안은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저하시킬 우려가 있고 하루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줄여달라는 주장도 우리의 현실을 외면한 요구라고 지적되고있다.
밀려드는 해외의 주문을 근로자들의 노동시간 제약 때문에 되돌려보낼만큼 우리의 사정에여유가 없으며 근로자들의 수입에도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국가적으로 우리는 아직 더 일하고 더 벌어들여야 할 때일 뿐 아니라 근로자 개인의 입장으로도 생활수준 향상은 일하는 기회를 더 갖는데서 얻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앞으로의 노사분규는 노사 쌍방이 문제해결에 어떻게 임하느냐에 달러있다고 봐야할것같다. 노조측이 계속 과격한 행동을 하거나, 20여개에 달하는 많은 요구를 한꺼번에 내놓는 일이 반복되거나, 사용자측이 근로자의 목소리를 외면만 한다면 계속 분쟁의 불씨는 타오르고 진지한 자세로 하나하나 풀어나간다면 모처럼의 기회가 좋은 결실을 볼 수도 있다.
◇경제적 손실=노사분규에 의한 조업중단으로 울산지역의 현대중공업·동양나일론·태광산업·담산금속·현대자동차·현대미포조선소등 7개 업체는 그사이 적지 않은 경영피해가 발생했으며 회사측에서는 국내외고객들에게 주는 신용도 하락과 이미지 손상으로 파생되는 악영향을 크게 걱정하고 있다.
지난달28일부터 시작돼 31일하오 극적인 타결을 본 현대중공업의 경우 나흘간의 조업중단으로 회사측은 1백억원 상당의 직접적인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
근로자 하루임금만도 5억원인데 주문받은 각종 공사가 늦어짐에 따라 공기를 맞추기 위해서는 야간근무·휴일근무등이 필요해 그만큼 추가임금이 들게되고 해외거래에서 발생되는 손실도 훨씬 크리라는 분석.
현대중공업의 한 간부는 『나흘동안 근로자들의 농성으로 이미 1백억원의 손실을 보았으나 공기지연에 따른 문제는 그렇게 큰 영향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 바이어들이 상담을 꺼리는 양상이 나타나고있어 오히려 이 문제가 앞으로 큰 걱정이었는데 분규가 타결을 보아 다행』이라고 안도해하는 표정.
현대중공업은 선체등 선박의 각종부품과 철구조물·플랜트 공사 발주로 올 매출목표액은 1조3천억원.
또 닷새째 근로자들의 집단농성으로 회사생산활동이 완전마비된 태광산업 울산공장의 경우 하루 10억원씩 손실이 발생.
아크릴사·폴리에스터등 섬유중간원료를 하루 2백∼2백50t 생산하고 있는 이 공장은 근로자들이 지난달 30일부터 회사사무실과 정문을 봉쇄, 공장가동이 완전히 중단되고있다.
이때문에 태광산업으로부터 원료를 공급받던 중소섬유업체들은 원자재난이 더욱 가중되어 조업단축등 비상책을 쓰고있는 실정이다.

<임병대·김창욱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