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묵시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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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과학자나 미래학자들은 21세기의 세계를 유토피어로 예언한다.그러나 경제,사회학자들의 견해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최근 영국에서 출간된『서기2000년의 묵시록』은그런 장미빛 미래에 찬물을 끼얹어 화제가 되고 있다.저자는 영국「캘러헌」수상때 주미대사를 지낸「피터·제이」와 저명한 경제학자로 노동당 정권과 케냐정부의 고문을 역임한「마이클·스튜어트」.이들이 예언하는 21세기는 그야말로 세계의 종말이다.우선 80년대말 세계의 통화제도는 와해되고 그에 따라 극단적인 보호주의가 팽배,세계경제는 깊은 불황의 늪에 빠지며 실업은 급격히 늘어난다.그 결과 대규모 폭동과 데모가 일어나 선진국들은「베이루트화」한다.그래서 영국의 주민들은 차라리집안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으면 죽었지 밖에 나가기를 꺼려한다.프랑스에서는 체르노빌과 같은 방사능 누출사고가 일어나고,이탈리아는 내전직전 상태까지 간다.미국은 제3세계의 하나로 전락하고,필리핀은「마르코스」파의 군사정권이 부활한다.또 인도는 분단의 비극을 맞게되며,남아프리카에는 혁명이 일어나 1백만명이상의 사망자가 생긴다.그러나「논 픽션 소설」이라고 부제를 붙인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이런 단서를 달았다.『우리는 이같은 일이 꼭 일어난다고 예언하는 것은 아니다.다만 서방민주주의 제국이 현재직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경제문제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이런 사태도 일어날수 있다는 것이다.』특히 이 책이 관심을 끄는 것은 정치지도자들에 관한 부분이다.88년 이후 미국에는 일군의 새로운 정치가들이 등장하는데 이중에는 극도로 악화된 치안을 내세워 전화로 투표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거나 아예 헌법을 파기할 인물도 있다.유럽에는 007시리즈의 저자「이언·플레밍」의 소설에 나오는「스텍터」와 같은 전체주의적 인물이 등장,세계를 악몽에 시달리게 한다.그러나「대처」수상의 퇴진을 예고한 이 책은 출간도 되기전에 이미 빗나가 버렸다.다만 정치지도자들의 끝없는 야욕과 세계경제의 비정상적 흐름에 경각심을 주기위한 납량물쯤으로 생각하면 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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