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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발발 특종한 여기자 홀링워스, 역사 속으로

중앙일보

입력

“곧 무너져 내릴 듯한 승강기로 나를 밀어 넣으면 두려움에 떨 것이다. 기관총이 난사되는 곳이라면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일이란 흥분이 공포를 압도한다.”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여기자 클레어 홀링워스가 했던 말이다. 그가 10일(현지시간) 별세했다. 106세.

고인의 가족들은 “1세기에 걸쳐 뉴스를 보도한 걸출한 이력을 뒤로 하고 홀링워스가 오늘 밤 홍콩에서 숨졌음을 알리게 돼 슬프다”고 전했다. 1911년 영국 레스터에서 태어난 고인의 어린 시절은 1차 세계대전과 겹쳤다. 전폭기가 하늘을 갈랐다. 전쟁에 관심이 많은 부친 덕에 어릴 적부터 전쟁터를 찾아다녔고 외교·국제정치 서적을 섭렵했다.

정치 활동가이던 그는 24세이던 35년 데일리텔레그래프를 통해 독일의 폴란드 침공 사실을 알렸다. 폴란드 주재 비상근 통신원이 된 지 채 1주일도 안 된 시점이었다. 이후에도 베트남·알제리·팔레스타인 등 전쟁터를 누볐다. 70년대 이후엔 중국을 취재했다.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마오쩌둥 (毛澤東)의 부인인 장칭(江靑) 등과 교류했다. 89년 천안문 사태를 직접 목격했다.

전장 못지않게 정보 분야의 취재에도 발군이었다. 케임브리지대 출신의 소련 스파이였던 킴 필비 사건을 특종했다. 가디언이 중상모략으로 고발당할 수 있다고 우려, 석 달 간 보도하지 않을 정도로 민감하면서도 내밀한 정보였다.

고인에겐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잃을 뻔한 일도 있었다. 46년 예루살렘의 킹 다비드 호텔 폭발 사건 때 불과 18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당시 100여 명이 숨졌다. 157.5㎝의 단신인 그는 뼛속까지 기자였다. 연로해서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신발을 신고 여권을 챙기고 잠자리에 들 정도였다. 언제든 취재 명령에 응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그에게 “새 임무를 맡기는 전화벨이 울린다면 어디를 가겠다고 할 텐가”라고 묻자 “신문을 재빨리 훑어보겠다. 그리곤 ‘어디가 가장 위험한 곳이냐’라고 할 게다. 거기에 좋은 스토리가 있으니까”라고 답한 일도 있다. 두 번 결혼했는데 아이를 두진 않았다.

그의 전기를 쓴 종손은 “가족 사진 조차 지니지 않았다. 일이 그의 삶을 규정했다. 속보가 가장 중요했다”고 전했다. 젊은 시절 “좋은 진토닉이 어떤 남자보다 내게 큰 기쁨을 준다”고 호기롭게 말하곤 했다.

홍콩 주재 BBC 기자인 줄리아나 류는 “최근까지도 홍콩 외신기자클럽의 한 구석에 고인의 자리가 있었다”며 “그는 전설이자 영감을 주는 인물이었다. 특히 여기자들에게다. 그가 걸어온 놀라운 길 덕분에 우리가 있을 수 있었다”고 애도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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