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커버스토리] 찍어야 살고, 찍혀야 살고…음식·카페 비주얼 전성시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 음식·카페 비주얼 전성시대

디저트 카페 ‘도레도레’는 지난해 5월 서울 가로수길에 있는 매장 인테리어를 핑크·파랑·오렌지 등으로 컬러풀하게 바꾼 후 SNS 게시물 수와 고객이 크게 늘었다. 인증샷 손님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정유년을 기념해 한정판으로 내놓은 ‘꼬꼬닭 케이크’도 테이블에 올리자마자 카메라 세례를 받는 인기 아이템이다.

디저트 카페 ‘도레도레’는 지난해 5월 서울 가로수길에 있는 매장 인테리어를 핑크·파랑·오렌지 등으로 컬러풀하게 바꾼 후 SNS 게시물 수와 고객이 크게 늘었다. 인증샷 손님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정유년을 기념해 한정판으로 내놓은 ‘꼬꼬닭 케이크’도 테이블에 올리자마자 카메라 세례를 받는 인기 아이템이다.

인스타그래머블 하거나 죽거나 Instagrammable or die.
찍어야 살고 찍혀야 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사진 이야기다. 요즘 사람들은 가장 핫하다는 카페·식당의 인테리어와 메뉴를 찍어 SNS에 올리는데 열중하고 있다. 이 사진들이 모여 외식 트렌드 지표가 되고, 핫 플레이스 정보가 되니 찍는 입장, 찍히는 입장 모두 남들에게 뒤처져선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인스타그래머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다.

#혼자 보기 아깝거나 #차마 먹기 찔리거나

명품보다 트렌디한 취향 과시 세대
SNS서 본 ‘핫한 곳’ 일부러 찾아다녀
맛집 인증샷 좋으면 클릭 수 1.7배

사진발 잘 받는 핑크톤으로 2030 여심 저격
은은한 조명에 액자, 포토존까지 꾸며
‘눈에 양보하세요’ 인스타 메뉴 개발도

찰칵 찰칵-. 요즘 식당·카페에 가면 익숙하게 들리는 소리다.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느 장소에 갔는지 너도나도 인증샷을 찍는 광경이 낯설지 않다. 핫플레이스라면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저마다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이하 SNS)에 올리기 위한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혹여 자신이 사진을 찍지 않더라도 동석한 사람의 ‘인증 작업’이 끝날 때까지 섣불리 포크를 대면 안 된다는 것도 불문율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다보니 식당·카페들도 발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사진을 위한’ 인테리어와 메뉴 개발에 앞다퉈 열을 올린다. 이른바 ‘찍히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먹스타그래머블’하거나 망하거나

인스타그램은 요즘 가장 ‘핫’한 음식과 장소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SNS 플랫폼 이다. 똑같은 해시태그(검색어)를 단 수 천 개의 사진들이 한 눈에 트렌드 정보를 알려준다. 사진은 요즘 핫플레이스로 뜨고 있는 가로수길 디저트 카페 ‘소나’의 ‘샴페인 슈가볼’(위)과 SNS 인증샷 성지가 된 서촌 ‘플로이’를 검색한 결과다. 오른쪽은 최근 SNS에서 인기있는 장소와 메뉴들이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여기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은 요즘 가장 ‘핫’한 음식과 장소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SNS 플랫폼 이다. 똑같은 해시태그(검색어)를 단 수 천 개의 사진들이 한 눈에 트렌드 정보를 알려준다. 사진은 요즘 핫플레이스로 뜨고 있는 가로수길 디저트 카페 ‘소나’의 ‘샴페인 슈가볼’(위)과 SNS 인증샷 성지가 된 서촌 ‘플로이’를 검색한 결과다. 오른쪽은 최근 SNS에서 인기있는 장소와 메뉴들이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요즘 요식업계의 화두는 ‘인스타그래머블 하거나 죽거나’(instagrammable or die)다. 인스타그래머블이란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이미지나 공간을 뜻하는 말. 풀어 말하면 SNS에 올릴 만한 적합한 시각적 요소가 없으면 사람들이 오지 않아 결국 망한다는 뜻이다. 다양한 SNS 창구가 있지만 이미지 한 장으로 정보가 쉽게 전달되는 인스타그램이 대표 플랫폼이 되면서 나온 신조어다. 맛집 리뷰 SNS업체인 ‘망고 플레이트’의 이리나 마케팅팀장은 “사진이 있는 식당은 없는 식당보다 사용자들이 리뷰 쓸 확률이 6배 이상 높다”며 “같은 식당이라도 사진이 좋으면 약 1.7배 더 클릭된다”면서 인스타그래머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 ‘컴컴 베이커리 카페’가 오픈 1년 만에 매장 인테리어를 바꾼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해 7월 문 연 이 공간은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 건축사무소 출신의 강대화 건축가가 건물 전체의 설계를 맡았었다. 반짝이는 금속 소재 설치물을 중심으로 미래적이고 모던하게 꾸미면서 영국에서 주최하는 ‘레스토랑&바 디자인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사진 상 눈길을 끌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됐다. 요즘 카페의 성패를 좌우하는 젊은 여성들을 공략하기에는 컨셉트가 맞지 않았다. 고민 끝에 신명 대표는 인스타그래머블해지기 위해 카페 절반의 인테리어를 바꿨다. 벽 색깔을 로즈쿼츠(핑크)로 바꾸고 핑크색 네온사인과 큼직한 플라밍고(홍학) 풍선을 비치했다. 신 대표는 “인테리어를 바꾼 후 인스타그램 포스팅이 늘고 (용산)역 근처 예쁜 카페로 소문이 나 지방에서도 찾아오는 사람이 생겼다”며 “고객이 30% 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케이크 카페 ‘도레도레’도 지난해 5월 실내를 인증샷에 적합한 공간으로 다시 꾸몄다. 회색 노출 콘크리트로 되어있던 매장 인테리어를 핑크·오렌지·하늘색 등 16가지 컬러를 입힌 아기자기한 디자인으로 바꿨다. 빈티지풍 원목 테이블과 의자 역시 핑크·보라·빨강색 등으로 교체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게시물 수가 종전에 비해 20% 이상 늘면서 덩달아 손님도 많아졌다. 도레도레 심장용 마케팅팀 대리는 “예전에는 케이크나 케이크 쇼 케이스 사진이 주로 노출됐다면, 지금은 매장 전부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고객이 많아졌다”면서 “처음 온 손님들은 대부분 케이크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진을 찍기 위해 온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래머블을 추구하는 건 공간만은 아니다. 카페·음식점 메뉴 역시 ‘찍히기 좋아야’ 한다는 데 목숨을 건다. 라테 위에 컬러풀한 그림을 그려주는 크리아트(이태원 씨스루)나 커피 잔 입구에 휘핑크림을 두르고 그 안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먹는 티라미쏘(한남동 언더프레셔)는 SNS로 입소문 난 경우다. 매장에서 실제 가장 많이 팔리는 아메리카노보다 플렛화이트 라테, 비엔나커피처럼 시각적으로 눈길을 끄는 메뉴들이 SNS에서 더욱 회자되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컬러 튀고, 컨셉트 확실 … 인스타그래머블 공식

▷여기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예쁘게만 꾸미고 만든다고 사진에 찍히는 건 아니다. 트렌드 분석가 장경미씨는 “인스타그래머블하기 위한 몇 가지 공식이 있다”고 말한다. 누가 봐도 감탄할 만큼 예뻐야 하는 건 기본이고,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거나 사진이 매력적으로 나올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다.

서울 논현동 ‘글래드 라이브 강남’은 이같은 ‘인스타그래머블 요소’를 모두 갖추면서 입소문 난 대표적인 사례다. 1층 브런치 레스토랑 ‘플린트’는 화려한 럭셔리 컨셉트로, 3층 ‘디브릿지 컬러 애비뉴’는 벽·바닥·가구까지 온통 핑크색으로 꾸며 마치 인형의 집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의 F&B를 총괄 운영하는 손창현 오티디 대표는 “가장 트렌디한 소재를 써서 각 층을 꾸몄더니 SNS를 타고 20~30대 여성들이 모인다”고 말했다. 손 대표가 말한 ‘트렌디한 소재와 컬러’는 다름 아닌 ‘화이트 마블’과 ‘핑크’다. 화이트 마블의 경우 연한 갈색 마블링이 있는 하얀 대리석으로 테이블·바닥 등을 꾸미는 방식인데, 이것이 배경 또는 반사판 역할을 하면서 음식과 인물 사진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서울 남산 ‘보버라운지’, 청담동 ‘디센트’, 서촌 ‘플로이’도 화이트 마블을 쓴 인테리어로 입소문 난 사례다. 세 곳 모두 평일·주말 구분 없이 브런치와 음료, 디저트를 즐기기 위한 여성들로 가득 찬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핑크’는 카페마다 가장 안전한 인테리어 컬러로 손꼽는 색이다.

남다른 컨셉트로 승부하는 것도 인스타그래머블의 핵심 요소다. 성수동 카페 ‘갤러리 칼럼’이나 ‘카페 어니언’, 상수동 ‘제비다방’처럼 낡고 오래된 빈티지 공간들은 누구나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어질 만한 피사체다. 겉은 금방 무너질 것처럼 낡았지만 모던한 커피 테이블이나 선반을 선보인다든지(성수동 어니언), 오래된 폐공장 안에 미술작품과 진짜 나무가 들어차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 내는(갤러리 칼럼) 식으로 다양한 콘텐트를 갖춘 곳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또 다양한 식물이 가득 들어찬 ‘그린 인테리어’ 역시 요즘 가장 각광받는 인스타그래머블의 한 요소다. 연남동 ‘벌스가든’, 청담동 ‘퀸마마마켓’, 이태원 ‘세렝게티’ 등의 카페들이 이를 무기로 SNS에서 회자되는 곳이다. 벌스가든의 김성수 대표는 “사계절에 맞춰 수시로 식물을 바꾸기 때문에 그때마다 실내 분위기가 달라진다”며 “손님 대부분이 식물을 이용한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고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체적인 분위기나 컨셉트까지 맞추진 못하더라도 인스타그래머블을 추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사진이 잘 나올 수 있는 포토존을 설치하거나 아예 매장 자체를 사진의 배경이 되게끔 계획해 조명이나 액자를 설치하는 식이다. 연남동 아이스크림 가게 ‘더달아’는 아이스크림 광고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늘 그림이 그려진 포토존을 설치하고 아크릴로 된 바 테이블 안에도 LED조명을 넣어 독특한 사진이 연출될 수 있도록 꾸몄다. 광화문 ‘소년서커스’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환한 햇빛이 사진 촬영에 방해될까봐 창을 가리고 간접조명을 곳곳에 설치했다.

공간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메뉴에도 인스타그래머블한 핵심 요소는 숨어 있다. 일단 ‘플레이팅(음식이 담긴 모양)’이다. 한남동 ‘루루디’는 고풍스러운 유럽풍 식기에 허브·계피파우더 등을 사용한 그림 같은 플레이팅으로 매일 오전이면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여기에 생각지 못한 반전 요소가 더해지면 인기는 더 올라간다. 최근 가장 핫한 디저트로 꼽히는 신사동 가로수길 ‘카페 소나’의 샴페인 슈가볼은 인스타그램 게시물 수만 5900개가 넘는다. 초콜릿으로 만든 동그란 공을 스푼으로 깨면 그 안에서 샴페인 거품이 나오는데 플레이팅(음식이 담긴 모양)이 예쁘고 깨서 먹는 모습이 신기해 영상으로도 SNS 콘텐트가 많이 올라온다. 망원동 ‘도쿄빙수’는 그릇보다 3배 높게 빙수를 담아내는 모양도 특이하지만 빙수에 잘 쓰지 않는 재료인 토마토 페이스트를 빨갛게 얹은 토마토 빙수로 유명해졌다.

SNS 통해 ‘있어빌리티’ 욕구 과시

▷여기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는 #먹스타그램(3800만건) #맛스타그램(1860만건) #먹방(1123만건) #맛집(669만건) #먹부림(240만건) 같은 해시태그(검색키워드)를 단 게시물이 넘쳐난다(2016년 말 기준). 계정을 만든 누구라도 음식 평 하나쯤은 올린다고 할 만하다. 대체 맛집이라고 소문난 식당과 메뉴를 굳이 사진으로 남기고 불특정 다수와 공유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이 말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는 ‘일상의 기록’과 ‘과시’다. 밀레니얼 세대(18~30세)를 주축으로 스마트폰 하나로 개인의 일상을 디지털로 기록하는 ‘라이프 로그’(life log)가 일상화됐고, 여기에 자신의 일상과 취향을 자랑하고 이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결합한다는 이야기다. 이향은 성신여대 산업디자인과 연구교수는 “스스로 일상을 정리하면서 현재 가장 트렌디하고 있어 보이는 것들을 넣고 싶어 하는 ‘있어빌리티’(있어 보인다+abillity를 합친 단어) 욕구와 또 트렌드라고 생각되는 것을 따라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것 같은 동조심리가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 역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사진으로 구성된 자신만의 콘텐트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기 노출 욕구가 많아진 요즘 세대들이 트렌드를 누렸다는 증거로 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SNS를 통해 과시함으로써 자아를 확인하려 한다는 뜻. 양 교수는 “과거 명품·차 등 고가품으로 하던 자기 과시가 이제는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장소·음식으로 분야가 옮겨갔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인스타그래머인 초등학교 교사 안은솔(28)씨도 SNS에 맛집이나 핫플레이스가 뜨면 일부러 시간을 내 가보고 인증 사진을 올린다. 안씨는 “나와 취향이 비슷하거나 트렌드를 앞서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팔로우하기 때문에 그들이 가는 장소엔 일단 관심을 갖는다”며 “같은 장소가 2~3번 보이면 가보고 싶어지고 내 것에도 올리고 싶다는 생각에 꼭 사진을 찍고 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찍혀야 산다’는 비주얼 강조 시대에 대한 우려의 소리도 있다. 식당의 경우 ‘맛’이라는 본질을 잊고 너무 비주얼에만 치중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직장인 김현정(29)씨는 최근 햄버거 모양 케이크를 파는 가게가 SNS에 자주 올라와 찾아갔다가 거의 남기고 돌아왔다. 그는 “가게 외관은 핑크색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아 사진 찍기는 좋았지만 막상 먹어보니 너무 느끼하고 맛이 없어 실망했다”며 “다들 일부러 찾아가서 찍은 사진이 아까워 SNS에 올리다보니 엉뚱하게 더 유명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독특한 플레이팅으로 인스타그램에서 인기 있는 레스토랑 ‘류니끄’의 류태환 셰프도 따끔한 지적을 한다. “요즘 식당의 성공에 비주얼이 무시할 수 없는 요소지만 식당은 음식의 맛, 고객은 음식을 즐기는 것이 기본”이라며 “사진 찍기 좋은 장소보다는 음식 맛으로 식당을 평가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글=윤경희·백수진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각 업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