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이쑥] 풀이 과정이 정답 못지않게 중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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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 입시에서 과학논술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사진은 대구 과학고 학생들의 실습 장면. [중앙포토]

지난해 서울대가 2008학년도 입시안과 논술 예시문항을 발표했다. 서울대 입시안은 학과 영역 간, 단원 간 내용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통합논술'을 적극 도입하고 인문계는 물론, 자연계 입시에서도 논술 비중을 대폭 늘리겠다는 것이다. 아직 확정안은 아니지만 다른 대학들도 서울대를 따라 계열에 관계없이 논술을 도입하고 논술 비중을 높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덩달아 초. 중등 교육시장도 벌써 논술교육을 화두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금의 흐름이 유지된다면 2008학년도 입시는 1994년의 수능 도입과 본고사 부활만큼이나 큰 파괴력을 보일 것이다. 모두에게 생소한 과학논술이 자연계 입시에서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과학논술에 축적된 경험이나 노하우가 없어 앞으로의 경향이나 학습 방법의 갈피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과학논술의 특성에 맞는 모범적인 학습법이 절실하다.

그렇다면 과학논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흔히 논술이라면 가치판단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연습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인 논술 방식일 뿐이다. 과학은 자연을 객관적으로 다루는 학문이라 논쟁거리로 삼아 개인의 견해를 물을 만한 소재가 많지 않은 데다 다른 학문에 비해 명확한 증거가 매우 중요하고 논리 구조가 정형적이다. 따라서 자신의 견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보다 이미 확립된 지식으로 정확한 논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능력은 지식의 폭을 넓힌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편적인 지식을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이들을 한데 묶어 통합적으로 이해할 만한 논리, 즉 각각의 지식을 서로 연관시켜 생각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과학적 논리를 키우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교과서 내용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교과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교과 간 연관성을 파악하는 정도로도 배경지식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는 끝낼 수 있다.

단, 공부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현재 과학교육의 문제는 주입식 암기를 중심으로 한 학습 방식에 있다.

단적인 예가 고등학교 과학 첫 단원인 '과학의 연구 방법'이다. 이 단원은 과학 전반의 논리 구조를 이해하고 과학적인 사고를 연습하는 데 매우 중요한데도 이를 비중 있게 공부하는 학생이 별로 없다.

단편적인 암기는 당장 단답식 시험을 쉽게 치르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새로운 내용이나 두 가지 이상의 이론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 문제가 나오면 당황하기 십상이다. 지식 간의 논리 구조를 파악하지 않는 한 사고의 범위가 암기한 개별 지식의 범위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암기보다 이해에 초점을 두어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학에서 이해란 과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인 인과율을 파악하는 것이다.

인과율이란 별개로 관찰한 여러 현상을 원인과 결과로 나누어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법칙이다. 따라서 과학 이론에서는 현상과 이론을 알기보다 서로 다른 현상을 연결하는 인과율과 이로부터 이론을 끌어내는 과정을 파악해야 한다. 쉽게 말해 문제와 답이 아니라 풀이 과정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교과 외 내용이 전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과학에도 사회적인 이슈가 접목되거나 의견 대립이 있는 내용들이 있으므로 이러한 문제에 답하려면 각 입장의 근거와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시사성 있는 과학문제는 대개 교과서 밖의 범위이고 사회적 요소를 고려해야 할 때가 많으므로 관련 기사와 책을 참고해야 쉽게 대처할 수 있다.

전상일 환경과건강 대표

다양한 책을 읽다 보면 여러 글쓴이의 논리나 사고를 접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과학논술이 생소하더라도 새로운 내용을 찾아 지식을 늘리기보다는 교과서 내용을 심도 있게 공부하여 이해력과 논리력을 높이는 게 낫다. 웬만한 자연 현상은 고등학교 교과서 수준에서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다. 교과서에 실린 내용도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들도 새로운 지식을 쏟아내기보다 기본적인 내용들을 꼼꼼하게 정리하면서 공부하는 습관을 갖도록 지도해야 한다. 어느 공부나 마찬가지지만 중요한 점은 내용이 아니라 방법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전상일 환경과건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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