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피플] "후세인 재판에 정치적 압력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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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기본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피고인들의 두건을 돌려줘라."

지난해 10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 대한 첫 재판에서 리즈가르 아민(48) 판사는 이렇게 지시했다. 피고인들의 두건을 빼앗은 교도관들을 야단친 것이다.

큰 소리로 법정을 조롱하는 후세인에 대해서는 미소를 보이며 "미스터 후세인, 진정하시죠"라고 말했다. 테러 보복을 두려워해 나머지 4명의 판사는 TV에 얼굴이 공개되는 것을 피했지만 그는 이를 허용했다.

일곱 차례 공판까지 차분하고 공정하게 진행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그가 갑자기 사표를 던졌다. 재판 운영에 정치적 압력이 있다는 것이 이유다. 그는 현재 고향인 이라크 북동부 술라이마니야에 칩거하면서 대외 접촉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일에 재개될 재판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과 이라크 정부는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시아파 지도부가 그를 "유약하다"고 비난하는 상황이라 그는 "사임 철회 의사가 없다"는 입장이다.

쿠르드족 출신인 아민 판사의 사임 이유는 정치권과의 갈등이다. 알자지라 방송은 15일 "아민이 그동안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고 전했다. 수니파의 후세인 정권 당시 박해를 받았던 시아파 지도자들과 친시아파 언론들로부터다. 이들은 아민 판사가 후세인을 너무 부드럽게 다뤄 재판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며 그를 압박해 왔다. 재판도 더 신속히 진행해 조속한 단죄를 요구하고 있다. 아민은 피고인 후세인이 법정에서 호령하는 것을 방치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이라크 정부로서는 그의 사임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정부가 재판에 개입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국제적으로 합법성 시비에 휘말려 있는 재판의 공정성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후세인 재판을 이라크가 아닌 제3국에서 열 것을 촉구하고 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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