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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찻잔에 달아준 손잡이처럼 스마트폰은 기계·인간 사이 벽 없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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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스마트폰 10년

이어령 이사장은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야 새로운 세상을 맞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 김경록 기자]

이어령 이사장은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야 새로운 세상을 맞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 김경록 기자]

“스마트폰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인터페이스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이어령이 본 ‘스마트폰이 바꾼 세상’
누구나 쉽게 쓰는‘인터페이스 혁명’
관계로 존재하는 상호의존 시대 열어
이젠 인공지능 넘어 인공지혜 고민을

이어령(83)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은 “기계와 인간, 자연과 인간, 너와 나처럼 둘 사이에 가로놓인 접합공간이 인터페이스인데 스마트폰은 기계와 인간의 사이를 없앴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이사장은 아이폰 출시 10주년(9일)을 맞아 지난 4일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스마트폰 이후 세상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본지와 인터뷰했다.

이 이사장은 탁자에 놓인 손잡이 없는 녹차 잔을 들어 스마트폰과 인터페이스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찻잔이 뜨거워 만질 수 없을 때 손잡이를 달아주면 해결된다. 쥘 수 없는 뜨거운 잔과 나 사이의 경계를 사라지게 하는 손잡이가 바로 인터페이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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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간의 사고 혁명까지 일어났다고 말했다. ‘실체’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생각의 틀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실체 개념에서 보면 한 개인은 ‘dependence(종속) 또는 independence(독립)’, 둘 중 하나의 형태로만 존재하는데 관계 중심에서는 ‘interdependence(상호의존)’로 바뀌면서 상대적 개념으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알기 쉽게 자동차를 예로 들었다. 세계 유일의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면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만 혼자만 가진 스마트폰은 무용지물이다. 스마트폰은 바로 관계 중심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는 스마트폰 등장으로 관계 중심이 되면서 세상도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인터페이스 혁명 이전, 즉 실체 개념이 지배하던 사회에서는 활자도, 컴퓨터도 지배자의 전유물이었고 그래서 빅 브라더가 존재했다. 그러나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는 조지 오웰이 빅 브라더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리라는 1984년 바로 그해에 애플2의 PC를 만들어 오히려 민중이 관료 체계를 감시하는 역류현상을 만들어 냈다.”

이젠 개인이 빅 브라더 돼 권력 감시

아이폰 초기 모델

아이폰 초기 모델

이 이사장은 10년간 스마트폰상을 오간 서비스와 정보의 흐름도 면밀히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인류는 스마트폰을 통해 각종 서비스를 편리하게 제공받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면엔 인류가 구글이나 삼성·애플 등에 엄청난 정보를 제공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영어 단어 ‘asset’에는 자산이란 뜻도 있지만 ‘정보 제공자’란 뜻도 있다”며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마다 지구상의 모든 정보가 구글 같은 업체들의 클라우드 속에 빅데이터로 쌓이고 있다”고 했다. 즉 아날로그 자산이 디지털 자산이 되고 그것이 애플이나 구글이 개발 중인 자동차가 되어 아날로그의 실생활로 다시 출현한다는 얘기다. 그는 이들 빅데이터가 인공지능(AI)으로 진화해 IT(정보기술)·BT(바이오테크놀로지)·NT(나노테크놀로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들 분야에서 ‘기술 특이점’에 도달하는 2045년에는 인간의 두뇌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기후문제, 식량문제 등 21세기의 난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AI가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떨치라고 조언했다. ‘알파고 포비아(공포)’에서 ‘알파고 필리아(사랑)’로 사고를 전환하고 걱정보다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는 이미 AI가 무엇이며 어떻게 개발·활용해야 하는지 온라인 대학이 생겨났고 수강생만 100만 명이 넘는다”며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은 세계 선두를 달리던 우리 IT가 AI 분야에서 일본은 물론 중국에까지 뒤처진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AI는 놀랍게도 전 세계에서 50명 정도가 주도하는데 그중 한 명인 앤드루 응 교수가 바이두에 합류해 중국 AI를 주도하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이런 인물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계 AI 연구, 앤드루 응 등 50명이 주도

앤드루 응

앤드루 응

한국이 처한 AI 현실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기차 플랫폼의 한 장면으로 설명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기차를 타고 떠나가고 있는데 지금 바로 뛰어가면 여자가 내민 손을 잡아 함께 타고 가는 해피엔딩이지만, 한발 늦으면 기차에 가속이 붙어 따라붙을 수가 없다. 한국의 AI는 바로 그 순간에 있다.” 온 사회가 머뭇거릴 새 없이 AI의 미래로 뛰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낙관론을 펼쳤다. 그는 “증기기관이 생기면서 나룻배 뱃사공은 일감을 잃었지만 더 많은 사람이 뱃사람으로 일자리를 얻게 됐다. 인터넷이 생기면 출장 가는 사원들이 사라져 항공사가 망할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출장 횟수가 더 늘고 항공사의 수요는 늘었다”고 했다.

그는 이런 현상을 디지털 세상에서도 아날로그적 행동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전화하고 문자 하는 내용의 상당수가 결국 언제 만나자는 것”이라며 “디지털이 발전했지만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는 행위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환자의 환부를 찍는 기술이 발전하면 의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를 찍고 판독하는 직업이 또 생긴다는 것이다. 또 AI로 생산성이 높아져 먹고살 걱정이 없어지면 경로당에서 노래 불러 주기처럼 차원이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 미래 직업으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 많은 새 일감이 생겨나고 기존 직업도 일의 형태를 달리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AI 세상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호주머니 속에서 이미 싹트고 자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류가 해야 할 일은 ‘인공지능’을 ‘인공지혜’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산업시대 때 모든 사람이 기차를 보고 (두려움에) 눈을 흘겼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이 편하게 이용하는 수단이 됐다. 컴퓨터 애니악도 미 국방부가 탄도탄을 계산하려고 만든 전쟁의 산물이지만 결국 인류의 삶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지능과 대립하지 않고 보완하는 조력자가 되도록 법·제도·윤리적 가치를 정비하는 게 우리가 시급히 할 일”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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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지금부터 AI가 가져올 미래를 교육해야 새로운 일자리로 옮겨 탈 수 있어서다. “당장 초등학교에서부터 새로운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세계가 우리를 따라올 수밖에 없다. 산업사회에서는 지각생이었지만 AI의 시대에 우리는 선두주자가 될 기회를 맞고 있다.”

박태희·김도년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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