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 노조에 백기투항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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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대차의 임단협 합의안에서 노조의 경영권 참여 수용을 놓고 재계에선 회사 측이 파업 장기화 등 노동계의 힘에 밀려 '백기투항'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파장이 산업계로 확산될 조짐이고 현대차도 향후 경영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재계에선 현대차가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압력 ▶3대 핵심 쟁점에 대한 노동계의 강경 투쟁 의지 ▶파업 장기화에 따른 내수 및 수출 마비 ▶정몽헌 회장 급보 등으로 '벼랑끝에 몰린 고육지책'을 내놓았다고 보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도 "지난달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검토가 회사 측으로선 5일 협상 타결에 압력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정부로부터 어떠한 메시지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교섭 결렬에 따른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이 노사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킬 수 있는 데다 회사 측에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판단도 노조의 경영 참여 요구를 일부 받아들이게 했다"고 덧붙였다.

재계와 노동계의 대리전이 된 현대차 노사협상에서 3대 핵심에 대한 노조의 강경한 입장도 회사 측으로선 풀어야 할 숙제였다. 결국 양측이 합의안에 노조 대표 이사회 참석을 제외하는 대신 주요 사업의 노조 협의를 담으면서 서로 한발짝 물러선 것이다.

현대차 측은 "노조가 강력히 주장한 징계위 노사 동수 구성 등을 거부하는 대신 어차피 수용해야 할 주5일 근무제 실시 등을 받아들인 것"이라며 "막판 협상에서 임금 인상안을 대폭 양보한 것도 노조 측에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현대차가 노조의 이사회 참석을 막았다고 하지만 노조가 일부에서라도 경영에 참여하면서 사업 차질 및 위축이 불가피하다"며 "결국 노동계의 경영권 참여 요구에 물꼬를 만들어 준 셈"이라고 말했다.

장기 파업에 따른 피해도 현대차를 협상 테이블에 떠밀었다. 현대차는 장기간의 노사 분규로 지금까지 1조3천억원 규모의 내수와 수출이 차질을 빚은 데다 이달부터 생산라인이 정상 가동되지 않으면 자동차산업 대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광주시의 경원하이텍이 납품업체로선 처음으로 부도를 내는 등 협력업체들의 장기간 조업 단축 및 극심한 자금난도 부담이 됐다.

현대.기아차 협력사 협의회의 이영섭 회장은 이날 연 기자회견에서 "특히 2, 3차 부품업체 3천여사는 조업 단축과 근로자 이탈 등으로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일부 업체는 업종 변경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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