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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타봤습니다] 세계 첫 야간 자율주행 성공한 현대차 아이오닉 자율주행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여기서부터 자율주행을 시작하겠습니다.” 운전자가 핸들에서 손을 뗐다. 우회전 구간에서 깜박이가 혼자 켜지더니 핸들이 저절로 돌아갔다. 갑자기 차 한대가 앞으로 끼어들었다. 차량은 곧바로 속도를 줄여 간격을 벌렸다. 상습 정체 구간에선 제한 속도(시속 45마일·70㎞)보다 느린 시속 38마일로 달리다가 멀리 정체 행렬이 보이자 천천히 감속해 뒤에 붙었다. 저 혼자 빙글빙글 도는 핸들을 보지 않았다면 마치 점잖은 운전자가 모는 차를 얻어탄 느낌이랄까.

3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내 4㎞ 구간을 현대자동차의 자율주행차 '아이오닉'으로 달렸다. 시승 행사는 5일 개막하는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 맞춰 기획됐다. 자율주행 기술 시연에 나선 아이오닉은 현대차 중 처음으로 미국자동차공학회(SEA) 기준 4단계인 ‘완전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했다. 4단계는 운전자가 차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아도 차가 알아서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수준이다. 운전자 없이도 알아서 달리는 5단계 기술을 제외하면 사실상 자율주행 기술의 완성 단계다.

완성 단계의 자율주행인 만큼 현대차는 자체 제작 차로는 처음으로 교통통제 없이 실제 도로에서 자율주행을 시연했다. 특히 이날 아이오닉은 ‘세계 최초의 4단계 자율차 야간 주행 시연’이란 기록까지 썼다. 이날 아침 10시 무렵 시작된 시승 행사는 해가 진 9시 반까지 이어졌고, 아이오닉은 일몰 뒤 있었던 세 차례의 주행에서 낮 시간과 다를 바 없이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였다.

한지형 현대차 책임연구원은 “야간엔 사물을 인식하기가 어려워지는 만큼 더 정밀한 이미지 센싱 기술이 필요하고, 이 때문에 지금껏 공개적으로 야간 주행을 시도한 자율차가 없었다”며 “네온사인이 많아 분석하기가 유난히 복잡한 라스베가스 도심에서 야간 주행에 성공했다는데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자율 주행 기술의 핵심은 ‘자동차의 눈’이다. 즉 얼마나 도로 위와 전후좌우를 잘 살펴 돌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아이오닉 자율차는 차량 전면부 하단에 세개의 라이다(LIDARㆍ레이저 레이더)를 부착했다. 라이다는 여러 방향으로 동시에 적외선 레이저를 쏘아 반사된 파장을 바탕으로 사물을 구분한다. 카메라나 레이더보다 빠른 속도로 사물을 인식할 수 있어 완전 자율주행을 위한 핵심 센서로 꼽힌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은 연구용 자율주행 차량에서 주로 ‘벨로다인 라이다’를 사용했다. 경찰차 사이렌처럼 자동차 꼭대기에 달려 360도로 사물을 인식한다. 하지만 개당 가격이 1000만원 안팎으로 비싼데다, 툭 튀어나온 모양 때문에 상용차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을 받았다.
현대차 측은 이날 장착한 3개의 내장형 라이다는 양산이 시작되면 개당 가격을 100만원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운전석 바로 옆엔 10인치 남짓한 모니터가 붙어있었다. 차량이 제대로 사물을 인지하는지를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게끔 한 장치다. 신호등이 나올 때마다 모니터엔 신호등 위치와 현재 색깔이 바로 표시됐다. 인도로 사람이 지나가거나 앞에 차량이 나타나면 모니터에도 그림이 떠올랐다.

운전을 맡은 한지형 현대차 책임연구원은 “이런 모니터가 없으면 ‘이 차가 사방을 살피고 있는게 맞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작은 장애물이 나와도 브레이크를 밟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며 “운전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위해 붙여놓은 것”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가 CES를 맞아 완전 자율주행차를 공개한 건 우연이 아니다. 최근 CES는 ‘라스베가스 모토쇼’로 불릴 정도로 자동차 관련 기술의 경연장이 됐다. 특히 자율주행 기술을 바탕으로 한 ‘스마트카’가 핵심 주제다. 닛산ㆍ벤츠 등 10여개 완성차 업체, 보쉬ㆍ덴소 등 500여 개 자동차 부품업체가 참석한다. 현대차 외에 포드ㆍ도요타ㆍ폭스바겐 등이 자율주행차를 공개하고, 반도체 설계업체 엔비디아도 CES 기자단을 상대로 자사의 플랫폼을 장착한 자율주행차 시승 행사를 5~8일 연다. 닛산의 카를로스곤 회장도 5일(현지시간) 기조연설을 통해 자율차 발전 방향을 전망할 계획이다.

한편 '테슬라의 대항마'로 꼽히는 전기차의 신흥 강자 패러데이퓨처는 3일 라스베이거스 한 전시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산형 전기차 'FF91'을 공개했다. 연비(한번 충전으로 608㎞ 주행)나 가속 기능(시속 97㎞ 도달시간 2.39초)에서 모두 테슬라 S모델을 능가했다는 게 회사 측의 주장이다. 자동차공학회 이사를 지낸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스마트폰이나 가전의 혁신 속도보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혁신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세계적 이목이 쏠릴 수 밖에 없다”며 “2020년 무렵엔 상당수 업체들이 자율주행차 양산에 들어갈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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