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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기자의문학 터치] 10년을 몸부림친 시인의 목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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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그러더니 며칠 전 두 번째 시집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문학동네)을 슬그머니 내놨다. 사실 한참 멀어진 줄 알았다. 문예지에서 종종 이름 보이곤 했지만 폐업 10년차 시인의 복귀가 불쑥 도래한 줄은 몰랐다.

시집은 우선, 한 마디로 줄이기 힘들다. 시집은 너무 많은 걸 궁리하고, 탐구하고, 발언하고, 욕망한다. 시집을 관통하는 어조는 피 뜨거운 청년의 것이지만, 어미의 너그러운 목소리도 언뜻 들린다. '빳빳한 남근 이미지를 지닌 시인'이라는 시인 성기완의 독후감과 '강정의 시적 성별은 여성'이라는 시인 함성호의 해설이 정반대인 건 이 때문이다.

그나마 또렷한 건, 무언가 그 궁극을 추구하는 도저한 의지다. 넘어지고 엎어지며 궁극을 향하는 꿈틀거림이 만져진다. 아마도 그 끝에는 시가 도사릴 것이다. 거기에 가려고 시인은 10년을 바쳤을 것이다.

'죽지 못한 시인은 불에 구운 모래를/여전히 빗물이라 착각한다/…/혀를 뽑으니 온 천지가 피 묻은 사막이다/내 안의 시인이 드디어 자결한 것이다'('봄날의 전장' 부분), '그의 몸짓이 어떤 분명하지 않은 시원(始原)을 암시하고 있는데/나는 하염없이 눈만 깜빡거린다/…/저 지겨운 몰입을 보라/시를 낳을 저 몸이 내 안에서 살던 것이라니!'('알을 품은 시인' 부분), '토끼 이외의 것이 될 수 없는 토끼는/토끼 이외의 것들을 살피면서/이상이 되고/김수영도 되고/이소룡도 되었다가/…/들판을 달리는 토끼가/여전히 보이지 않는다/들판을 달리는 토끼가/모든 걸 보아버렸기 때문이다'('들판을 달리는 토끼' 부분) 등은 모두 시를 앓아온 시인의 세월을, 그 업(業)의 10년을 가리킨다.

얼마 전 그는 난해 시를 생산하는 또래 시인들을 바퀴벌레라고 불렀다. 그들의 감각과 폐쇄성, 그들을 향한 문단의 시선까지 고려한 호명이었다. 이어 자신은 쇠잔한 바퀴벌레라고 했다. 여기서 은근한 자존심 같은 걸 감지했다. 그리고 그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다. 강정의 지난 10년은 고스란히 시에 헌신한 세월이었다는 걸 이번 시집에서 알아냈기 때문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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