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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결혼해서 절세하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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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양선희
논설위원

세계 최악의 저출산 국가인 한국의 출산 장려정책은 초지일관 ‘결혼’이다. 청년층의 결혼을 장려하거나 혼인가구의 다자녀를 권장하는 게 저출산 대책의 주요 골격이다.

결혼에만 올인하는 저출산 대책
다양화하는 가족구조 반영 못해

드디어 올해는 결혼 세제혜택까지 나왔다. 탄핵 정국 때문에 언론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정부가 발표한 올 경제정책 방향에 담긴 주요 저출산 정책은 이거였다. 총 급여 7000만원 이하인 신혼부부에게 1인당 50만원, 맞벌이 부부는 100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겠다는 것. 또 대부분 세 자녀 중심으로 설계된 저출산 관련 인센티브도 두 자녀 가구 중심으로 재설계하겠다는 것이다. 한데 이 정책이 발표되자 세간의 반응은 이랬다. “네가 낳아라, 베이비” “너나 해라, 결혼”.

행정자치부는 저출산 극복을 위한 대책이라며 지방자치단체별로 가임기 여성의 숫자를 1단위까지 표시해 가임여성 분포현황을 실은 ‘대한민국출산지도’라는 홈페이지를 열었다 하루 만에 폐쇄했다. “저출산이 여성의 출산 태업 때문이냐” “여성이 애 낳는 도구냐”는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서둘러 닫은 것이다.

이처럼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는 저출산 정책은 국민의 공감 밖에서 겉돌고 핀잔거리로 전락하기 일쑤다. 이미 80조원을 쏟아 붓고도 2016년부터 5년간 100조원을 더 투입한다는 ‘장엄한’ 저출산 계획 목표는 합계출산율 1.5명 달성이다. 정부는 투입과 산출로 계산해 정교하게 진행하는 저출산 정책의 효과를 자랑한다. 저출산 정책 1차 계획기간(2006~2010년) 평균 1.19명이었던 출산율을 2차 기간(2011~2015년) 평균 1.24명으로 높였다는 게 대표적 치적이다. 그럼 출생아 수도 늘었을까. 1차 기간엔 연평균 46만4500명, 2차 기간엔 45만3200명이다. 2015년엔 43만8200명, 지난해는 40만 명이 넘느냐 마느냐가 관건이다. 출산율과 출생아 수가 반비례하는 역설이 통계 뒤에 숨어 있다.

“가임여성 인구가 계속 줄고 있기 때문에 출산율 지표는 별로 의미가 없다. 향후 인구정책을 위해선 출산율이 아니라 일정 정도의 출생아 수 유지를 목표로 삼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장혜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니 우리 정부 저출산 정책의 목표는 왠지 허구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혼인장려’라는 수단은 현실적인 것일까. 지난해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절반(51.9%)이 조금 넘었고, 미혼이지만 동거할 수 있다는 사람은 절반(48%)에 근접했다. 그렇지만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는 75.8%가 반대했다. 결혼해야 출산할 수 있다는 의식은 강고하다.

이삼식 한국보건연구원 저출산고령사회연구단장은 우리나라 저출산 대책의 한계를 드러내는 그래프 하나를 보여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혼인외 출산율 그래프였다. OECD 국가의 혼외출산비율은 평균 36.3%. 영국·프랑스·스웨덴 등은 절반을 훌쩍 넘는다. 한국은 1.5%다. 출생아의 98.5%가 결혼한 가구에서 태어난다. 싱글부모·비혼가정 등 세계의 가족 형태는 다양화되고, 대부분의 나라는 그런 변화에 맞춰 출산 정책을 추진한다. 평균출산율 2명 전후를 회복한 스웨덴과 프랑스는 출산·보육 및 교육 지원에 부모의 결혼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요즘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결혼을 기피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용할 의사가 있다. 한데 유독 출산만은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제도가 굳건하게도 ‘결혼 출산’만을 지향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저출산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나라가 먼저 정책 방향을 ‘결혼’과 ‘출산’을 분리하는 쪽으로 틀어야 한다. 정책이 선도해야 보통 사람들의 인식도 서서히 바뀐다. 대선주자들도 저출산을 최대 현안으로 지적하지만 ‘결혼장려’ 외에 아이디어가 별로 없다. 바뀌는 세상을 품지 못하는 공약은 거짓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