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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논점 -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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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중앙일보 <2016년 12월 21일자 34면>
계란 대란 부른 AI 사태, 정부가 안 보인다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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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인플루엔자(AI)가 재앙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달 16일 전남 해남 농가에서 최초 의심신고가 접수된 이후 한 달여 만인 지난 19일 자정까지 살처분된 가금류가 2000만 마리를 넘어섰다. 2014~2015년 고병원성 H5N8형 발생으로 669일간 1937만 마리를 살처분한 기록을 넘어 역대 최단·최악의 AI 피해를 낳고 있다.

번식용인 산란종계는 전체 사육 대비 38.6%가 살처분돼 자칫 양계산업의 기반이 무너질 위기다. 알 낳는 산란계는 17.8%가 살처분돼 시중에 달걀값 폭등과 공급 부족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사상 처음 항공편을 통한 생달걀 수입까지 추진 중이다. AI로 인한 농가 보상금과 생계소득 안정 등에 드는 국가 예산도 2014~2015년보다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에는 살처분 보상금 1392억원을 포함해 모두 2381억원이 들어갔다.

문제는 앞으로 AI 피해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현재 소독·살처분 등 차단 방역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 데다 AI를 보유한 야생 철새가 한반도로 계속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AI 바이러스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더 기승을 부린다. 이제 바이러스의 위력이 잦아들 내년 봄까지 사태가 장기화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각오해야 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정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AI 발생 초기에 정부 부처의 늑장 대응과 허술한 방역 대책으로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AI 대책을 다루는 범정부 차원의 관계장관회의가 지난 12일에야 처음 열렸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농가 최초 신고 이후 26일 만이며 야생 조류 확진 판정이 난 지 한 달 만이다. 위기경보는 AI가 사실상 전 지역으로 확산한 다음인 16일에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됐다. 올겨울 AI 확인 2시간 만에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방역을 챙기면서 위기경보를 즉시 최고 단계로 격상한 일본 사례를 굳이 들 필요도 없다. 2014년 1월 전북 고창에서 첫 AI 의심신고가 접수된 지 이틀 만에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 주재로 8개 부처가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했던 것과도 대비된다.

최순실 사태를 틈타 공직사회가 일손을 놓는 바람에 방역 컨트롤타워가 실종돼 ‘초기 골든타임’을 놓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똑같은 AI 바이러스를 지닌 철새들이 중국~한국~일본을 오간다. 그럼에도 한국과 일본의 살처분 가금류 비율이 2000만 대 100만 마리라니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황 총리가 AI 사태를 직접 챙기고,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도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겨울철마다 AI 재앙이 반복되는 만큼 정부는 양계산업을 비롯한 한국 축산업의 미래 전략을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필요하면 가금류 사육농가가 AI가 창궐하는 겨울철에 사육을 중단하는 대신 농가에 보상금을 지원하는 ‘휴업보상제’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한겨례 <2016년 12월 20일자 27면>
황 대행, 대통령 행세 그만두고 AI부터 수습하라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조류인플루엔자(AI) 피해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지금까지 닭 1656만 마리 등 1911만 마리가 살처분됐거나 될 예정이다. 전체의 12%에 이른다. 2년 전 6개월 사이 1396만 마리가 살처분된 것에 비하면 속도와 규모 면에서 거의 재앙 수준이다. 정부의 총체적 부실 대응으로 악몽이 현실화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피해는 사육 농가만의 일이 아니다. 16일 기준 달걀 한 판 소매가격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6% 급등해 학교 급식에 비상이 걸리고 유통 및 판매업계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재정지출도 2년 전의 2381억원을 훨씬 웃돌 전망이다. 정부는 19일 알 낳는 닭(산란계)을 수입해 달걀을 공급하고, 소비 활성화를 위한 홍보계획도 수립하겠다고 밝혔으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지난달 16일 첫 바이러스 검출 이래 지금까지 정부의 대응을 보면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조류인플루엔자가 세계 곳곳에서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는데도 정신줄 놓은 사람들처럼 안이한 태도로 일관했다. 발생 한 달 만인 지난 16일에야 위기 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올린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이 지난달 21일 바이러스 검출 직후 위기 경보를 최고 수준으로 올린 것과도 대비된다. 물론 오리를 거의 키우지 않는 등 우리와 사육 환경이 다르다고는 해도 아베 신조 총리가 서둘러 범정부 차원의 방역에 나서 살처분 78만 마리 등 피해를 대폭 줄인 것과 비교하면 무능한 행정력이 창피할 정도다.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은 조류인플루엔자 확진 이틀 뒤에야 가축방역심의회를 여는 등 늑장행정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지난 15일 경보를 ‘심각’으로 올리면서 엉뚱하게 살아 있는 닭 유통은 허용했다가 이틀 만에 다시 금지하는 등 오락가락한 것도 정부의 대응 능력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2일 뒤늦게나마 조류인플루엔자 방역 점검회의를 주재하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서는 듯하더니 결국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엔 실패한 꼴이 됐다. 국회의 요구는 경시하면서 민생·교통 현장 방문(13일), 구세군 자선냄비 성금 전달(15일), 한미연합사 방문(16일) 등 ‘대통령 코스프레’에 정신을 팔 때가 아니다. 당장 시급한 민생 문제인 조류인플루엔자 방역 대책만이라도 제대로 추진하기 바란다.

논리 vs 논리
“늑장 대응이 부른 최악 AI 사태” vs “황교안 대행 민생부터 챙겨야”

조류인플루엔자(AI)의 기세가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경기도 안성에서 계란을 땅에 묻고 있다. [뉴시스]

조류인플루엔자(AI)의 기세가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경기도 안성에서 계란을 땅에 묻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1월 16일, 전남 해남의 닭 농장과 충북 음성의 오리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의심신고가 접수되었다. 이후 43일 동안(12월 29일 기준) 신고 건수 116건 가운데 113건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검사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된 농장까지 합하면 양성 농가는 290개다. 발생 지역은 경북과 제주를 제외한 10개 시·도, 36개 시·군으로 확대되었다. 농장의 가금류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확인되면 발생 농장뿐만 아니라 3㎞ 이내의 닭이나 오리 및 달걀은 전부 폐기 조치된다. 역대 가장 큰 피해를 끼친 지난 2014년의 AI는 발생 기간 195일 동안 1396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이와 비교해보면, 현재까지(12월 31일 기준) 살처분된 닭과 오리가 2883만 마리에 이른다고 하니 실로 끔찍한 조류 대참사다. 한겨레와 중앙 모두 이번 AI가 속도와 규모 면에서 훨씬 빠르고 강력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기온이 낮아지면 활동성이 더 강해지는 AI의 특성상 미래도 낙관하기가 어렵다고 우려하였다.

한겨레와 중앙은 살처분된 조류가 2000만 마리에 육박하고(12월 19일 기준) 계란 대란이 본격화되자 AI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두 신문 모두 일본 정부가 AI 발생 2시간 만에 적극적 방역을 실시하여 피해를 최소화한 사례를 들어 우리 정부의 부실한 대응을 질타하였다. 그러나 사태를 키운 원인 파악에서 한겨레와 중앙은 다소 무게중심이 달랐다. 한겨레는 정부 내 책임 있는 방역 주체를 구체적으로 지목하여 무능과 무책임을 따졌고, 중앙은 정부 부처가 늑장 대응과 허술한 방역으로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키지 않았던 과정을 문제 삼았다.

한겨레는 우선 주무부처 수장이면서도 늑장행정을 펼쳤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주목하였다. 또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해서도 AI 방역회의를 하였지만 결국 달걀 수입으로 귀결된 것은 실효성 있는 방역에 실패한 꼴이라며 무능함을 비판하였다. 이 와중에 가장 큰 권한과 책임을 가진 황 권한대행이 민생을 살피기보다 홍보성 행사 일정을 우선 챙기는 모습에서 ‘대통령 코스프레’라며 못마땅해 했다. 한편, 중앙은 AI가 신고된 지 무려 26일 만에 범정부 차원의 관계장관회의가 개최된 점을 장탄식으로 비판하였다. 2014년, 이틀 만에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8개 부처 긴급회의가 열린 것과도 대비된다. 중앙은 최순실 사태로 인해 방역 컨트롤타워가 실종됨에 따라 공직사회도 복지부동으로 대응한 점을 특히 문제 삼았다.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매뉴얼이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중앙은 향후 황 총리의 적극 지휘 및 농림축산식품부에 응분의 책임을 물을 것, 겨울철 휴업보상제를 도입할 것 등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였다.

AI 재난은 2003년 국내에서 최초 발생한 이후 이번이 여섯 번째다. 13년간 겨울철이 오면 감염병으로 큰 손실을 안겨준 만큼 대응 매뉴얼이 없을 리가 없다. 확인해 보니, 농림축산식품부는 500쪽 분량의 ‘조류인플루엔자 긴급행동지침’을 지난 10월에 발간한 바 있다. 위기 단계를 4단계로 설정하여 발생 상황에 따른 주요 조치 및 유관 부처 협조, 부문별 표준행동 요령을 매우 체계적으로 자세하게 마련해 놓았다.

이번 AI 재난에 대입해 보면, 발생 초기 1주일 만에 이미 서해안과 중부 내륙에까지 퍼져 최고 위험 등급인 ‘심각’ 단계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심각’ 단계로 공표한 때는 한 달 후인 12월 15일이다. 2014년에 유행한 H5N8형 바이러스나 이번에 전파된 중국발 H5N6형 바이러스 모두 전파 속도가 빠르고 치사율이 높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심각할 정도로 안이하게 대응한 것이다.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는 AI방역대책본부를 두고 농립축산검역본부, 지자체의 대책본부, 시·도 방역기관, 가축 소유자 및 축산 관련 종사자 등과 보고 및 지원을 긴밀히 유지해야 했다.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도 관계 부처가 함께 모여 범정부적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황교안 총리는 12월 12일에서야 AI 방역점검회의를 주재하였고, 농식품부 장관은 14일부터 관계 부처 차관 및 시·도 부시장들과 함께 AI 일일 점검회의를 열고 있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정부와 책임 있는 공무원들이 늑장 대응과 허술하게 대응하는 동안 전국 581개 농가는 애지중지 기른 가금류를 살처분해야 했고 2900여만 마리의 닭과 오리는 죄도 없이 죽어야 했다. 또한 방역을 담당하는 일선 공무원들은 육체적 피로에 시달리던 중 숨지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반복되는 긴급 재해 상황을 볼 때마다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와 일사불란하고 신속한 대응이 아쉽기만 하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