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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 대리' 류철균 이대 교수, 실명·필명 동원해 표절의혹 빠져나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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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의 과제를 대신 제출한 혐의로 긴급체포된 류철균(필명 이인화)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가 과거 자신의 소설이 표절 의혹에 휘말리자 실명과 필명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자기를 비호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류 교수의 표절 의혹이 처음 제기된 건 1992년이다 문학평론가 이성욱씨가 '한길문학' 여름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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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류 교수가 필명 이인화로 쓴 소설(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이 공지영과 무라카미 하루키 등 국내와 작가들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필명 '이인화'로 작품 활동 중인 류철균 이화여대 교수. 최순실의 딸 정유라씨의 과제를 대신 제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류 교수가 1992년에 이인화란 필명으로 발표한 '내가 누구인지…'는 그 해 제1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이씨가 구체적인 표절 의심 사례를 제시하면서 논쟁이 일었다.

"온몸의 감각이 무디어지고 이대로 촛물처럼 녹아 땅속으로 사라졌으면…어서 이 밤이 갔으면…어서 이 겨울이 갔으면, 어서어서 꽃이지고 찬바람이 불고 아주아주 늙어 버렸으면…잠 못 드는 이 긴 세월이 힘겹다. 이 젊음이 내겐 힘겹다." (이인화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중)

"온몸의 감각이 무디어지고 이대로 영원히 촛물처럼 녹아 땅속으로 스며들어 갈 것만 같다. 어서 이 밤이 갔으면, 어서 이 가을이 갔으면 어서어서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아주 늙었버렸으면...... 젊음이 내게는 너무 힘겨워" (공지영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중)

이씨는 "작가 이인화는 남의 작품을 무단 도용한 '인식적 금치산자'이자 '형식주의자'"라고 호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류 교수는 자신의 본명으로 자기변호성 평론을 냈다.

1992년 '책마을' 봄호에 기고한 글(재현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질문)을 통해 자신의 신작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평론과 함께 표절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또 이인화라는 필명을 이용해 '새 기법 관행으로 평가 말자'라는 글로 표절 논란을 방어하기도 했다.

자신의 작품이 '혼성모방'이라는 새로운 기법으로 쓴 것인데 표절 논란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것이란 주장을 펼쳤다.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평론가 류철균'과 '작가 이인화' 두 인격체를 내세웠던 것이다.

결국 '혼성모방' 기법과 신세대 문학에 대한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본래 표절 의혹은 결론 없이 사그라들었다.

그러다 23년 뒤인 2015년 말에 다시 점화됐다.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이 불거진 뒤 신 작가의 남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 명지대 문예창작학 교수가 류 교수의 소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표절 문제를 다시 끄집어냈다.

남 교수는 '현대시학' 2015년 12월호 권두시론 '표절의 제국-회상, 혹은 표절과 문학권력에 대한 단상'에서 신 작가의 표절 논란에 대해 사과하면서 '내가 누구인지…'가 일본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 '키친'과 미국 작가인 버나드 맬러무드의 작품 '월세입주자'를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는 "풍문으로만 전해왔을 뿐 한번도 그 전모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내가 누구인지…'의 표절 양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한다"며 표절이 의심되는 대목 10여 문단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당시에도 류 교수는 "23년 전에 다 나왔던 이야기"라며 표절 의혹을 부인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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