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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세계적 마카롱·수제팝콘마저…한국은 디저트 브랜드의 무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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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피에르 에르메

피에르 에르메

‘마카롱계의 샤넬’로 불리는 프랑스 ‘피에르 에르메 파리’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국내 첫 매장을 연 건 2015년 7월이었다. 현대백화점은 당시 ‘이 시대 최고의 디저트 브랜드’라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과장은 아니었다. 피에르 에르메는 4대째 마카롱을 만드는 집안 후손으로 당시 프랑스뿐 아니라 일본·홍콩 등에서도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현지에서 피에르 에르메를 맛본 사람들이 입점을 손꼽아 기다릴 만큼 국내 마니아층도 꽤 두터운 편이었다. 이부진 사장(당시 전무) 지시로 2010년 신라호텔의 베이커리에서 2주 동안 피에르 에르메 마카롱을 팔았을 당시에도 매일 긴 줄이 섰다. 이런 유명세 덕분에 매장 오픈 첫날에만 매출이 4000만원을 넘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인 지난 9월 피에르 에르메 매장은 식빵 전문점 ‘교토마블’로 바뀌었다. 청담동 디올 플래그십스토어의 피에르 에르메 카페를 제외하고는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것이다.

치즈케이크 팩토리

치즈케이크 팩토리

피에르 에르메뿐만이 아니다. 3~4년 전부터 숱한 해외 디저트 브랜드가 국내에 진출했지만 대부분 반짝 인기를 끌다 아예 한국 시장에서 사라졌다. 2013년 국내에 들어온 미국 치즈케이크 브랜드 ‘치즈케이크 팩토리’는 지난해 9월 백화점에서 매장을 철수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솔로몬F&B 관계자는 “백화점 등 매장은 전부 철수했다”며 “카페 등에 제품을 공급하는 유통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제 팝콘 전문점 ‘쿠쿠루자’, 프랑스 에클레어 전문점 ‘에끌레어 드 제니’ 등도 시끌벅적하게 한국 시장에 들어왔다가 1~2년 만에 조용히 사라졌다.

2014년 미국 수제팝콘 ‘쿠쿠루자’가 서울 삼성동 파르나스몰에 국내 최초로 입점했을 당시 팝콘을 사기 위해 줄서 있던 사람들의 모습. 하지만 쿠쿠루자는 1년 만에 철수했다. 요란하게 오픈했던 수입 디저트 브랜드들 역시 반짝 인기를 누리는 데 그쳤다.

2014년 미국 수제팝콘 ‘쿠쿠루자’가 서울 삼성동 파르나스몰에 국내 최초로 입점했을 당시 팝콘을 사기 위해 줄서 있던 사람들의 모습. 하지만 쿠쿠루자는 1년 만에 철수했다. 요란하게 오픈했던 수입 디저트 브랜드들 역시 반짝 인기를 누리는 데 그쳤다.

디저트 열풍이 불기 시작한 3~4년 전만 해도 해외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라는 이유만으로 소위 ‘대박’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엔 분위기가 달라졌다. 윤은옥 한국외식산업경영연구원 부장은 “과거엔 해외 브랜드라면 무조건 좋아 보여 지갑을 열었지만 지금은 해외에서 직접 경험한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현지와 꼼꼼하게 비교한다”며 “대박은커녕 해외 브랜드가 1년 넘게 롱런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첫날 4000만원 매출 올린 매장도
반짝 인기로 끝, 1년여 만에 문닫아
수입 때 운송비·통관비 붙어 비싸져
현지 사정 밝은 마니아층도 등돌려
너무 달거나 찐득·퍽퍽해도 외면
촉촉한 식감 일본 롤케이크는 선전

예컨대 지난 7월 미국 수제버거 전문점 ‘쉐이크쉑’ 1호점이 문을 열자 온라인에는 뉴욕 메뉴와 가격, 구성 등을 비교하는 글이 수없이 올라왔다. 치즈케이크 팩토리가 첫선을 보였을 때도 미국과 비교해 비싼 가격은 물론 맛과 메뉴 면에서도 불만이 있었다. 한 백화점 바이어는 “피에르 에르메나 치즈케이크 팩토리는 현지에서 냉동 상태 제품을 비행기로 가져오기에 운송비·통관비가 붙어 가격이 비싸게 책정됐다”며 “현지 사정에 밝은 해당 브랜드의 마니아층이 오히려 등을 돌리는 역효과가 났다”고 지적했다.

에끌레어 드 제니

에끌레어 드 제니

스몰 럭셔리(나를 위한 작은 사치)에도 가성비(가격 대비 만족도)를 따지는 눈 밝은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게 한국 시장에 안착하지 못한 한 요인이라는 얘기다.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비싼 가격이 발목을 잡은 셈이다. 윤 부장은 “국내 소비자가 전반적으로 디저트류에 대해 관심이 매우 많지만 일부 층을 제외하고는 가격 부담을 갖고 있다”며 “아무리 ‘스몰’ 럭셔리여도 대중적 아이템에 비해 손이 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니즈와 무관하게 국내에 진출하는 디저트 브랜드들은 대개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세운 고가 전략만 고수하고 있다.

국내 외식 소비 트렌드는 지나치게 빠르게 변화한다. 계속 새로운 것만 요구한다는 얘기다. 해외의 유명 브랜드라고 이런 요구를 피할 수 없다. 박보영 갤러리아백화점 식음바이어는 “국내 소비자 성향이 빠르게 바뀐다”며 “핫하다고 소문난 동네를 1년 후에 찾으면 매장 절반 이상이 바뀌어 있을 만큼 유행 주기 전환이 잦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한 아이템의 유행 주기를 3개월, 길어야 6개월로 본다. 특히 베이커리 상품군은 이런 트렌드 변화가 더 심하다. 현대백화점의 베이커리 브랜드는 1년에 20% 정도가 교체되는데 퇴점 브랜드의 절반 이상이 한국 시장 철수 등을 내세운 자진 퇴점의 경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유행 주기를 더 짧게 만드는 요인이다. 유명 브랜드가 들어오면 SNS엔 이를 구매하고 인증하는 인증샷 피드가 쏟아진다. 실제 맛이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사진을 찍고 과시하기 위한 한 번 경험으로 디저트를 구매한다는 얘기다. 일회성 소비에 그치다 보니 처음에만 줄이 설 정도로 반짝 인기를 누리다 금세 시들해진다.

사람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디저트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맛을 선호한다는 말이다. 국내에 덜 알려진 새 품목일수록 처음의 폭발적 관심에 비해 지속적인 재구매로 이어지기 어려운 이유다. 프랑스의 에클레어 전문 브랜드 ‘에끌레어 드 제니’도 1년 만에 철수했다. 최봉균 바이어는 실패 원인으로 “백화점 이용 고객이 마카롱은 알아도 에클레어는 알지 못하더라”고 지적했다.

식감도 브랜드의 성패를 가른다. 한국에선 찐득한 식감보다 부드러운 식감을 선호한다. 2013년 국내에 진출한 일본 브랜드 ‘몽슈슈’는 북해도산 생크림을 듬뿍 넣은 롤케이크 ‘도지마롤’을 내세워 인기를 끌었다. 롤케이크라는 익숙한 아이템에 부드러운 식감으로 국내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입점 초기처럼 줄을 설 만큼 인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백화점과 가로수길에 매장을 운영하며 롱런하고 있다. 일본의 치즈케이크 전문점 ‘르타오’는 작은 사이즈를 선호하는 국내 트렌드와 일치하는 데다 부드러운 식감으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선호하는 입맛이 비슷해 일본 브랜드가 롱런하기도 한다. 한국인 최초로 일본 특급호텔에서 제과장을 지낸 정홍연 오뗄두스 대표는 “유럽 사람들이 퍽퍽한 식감을 좋아한다면 한국과 일본 등의 동아시아 지역 사람들은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선 단맛도 선호하지 않는다. 유럽·미국·일본에서 줄을 서는 디저트 전문점이 국내에서 실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봉균 바이어는 “국내에선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가 있는 1·2월, 연말 같은 시즌에만 먹는다. 초콜릿·사탕·팝콘 같은 단맛이 강한 디저트가 롱런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 초콜릿이나 캐러멜 등으로 코팅한 수제 팝콘 ‘쿠쿠루자’는 일본에서도 줄 서서 사 먹을 만큼 인기지만 국내에선 1년 만에 철수했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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