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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거꾸로 탄 즐라탄, OLD한데 GOLD로 보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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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나이가 들수록, 난 더 좋아지는 것 같아, 마치 레드와인처럼(The older I get, the better I get, like red wine).”

노장 전성시대 연 스포츠스타들
완벽 자기관리, 승부욕으로 무장
축구 공격수 환갑 지난 즐라탄
올해 50골, 메시와 어깨 나란히
40대 이치로·최영필·방신봉 펄펄
이동국 200골, 주희정 1500스틸 도전
새해도 올드보이 대기록 행진 기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35·스웨덴)가 최근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오래된 빈티지 와인에 자신을 비유한 이브라히모비치의 말은 자신감의 발로인 동시에 그의 현 주소다.

축구에서 골키퍼나 수비수가 아닌 공격수의 경우 35세의 나이는 일반인으로 치면 환갑이나 다름없다. 그런 이브라히모비치가 2016~17시즌 EPL 득점 2위(12골·30일 기준)를 달리고 있다. 2016년 한 해만 보면 그의 활약은 더욱 두드러진다. 리그와 각종 클럽대항전을 합쳐 파리생제르맹(프랑스)에서 뛴 1~6월 33골, 맨유로 옮겨온 7월 이후 17골로 총 50골이다. 51골의 리오넬 메시(29·바르셀로나), 48골 루이스 수아레스(29·바르셀로나)와 어깨를 겨룰 정도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레알 마드리드)도 42골에 그쳤다. 이 정도면 최상급 빈티지 와인이 아닐까.

이브라히모비치는 1999년 스웨덴 프로축구 말뫼에서 데뷔했다. 이후 인터 밀란, 유벤투스, AC밀란(이상 이탈리아) 등을 거치면서 2006~07시즌부터 11시즌 연속 정규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 중이다. 키가 1m95㎝인 이브라히모비치는 어릴적 태권도를 배워 유연한 몸동작으로 환상적인 골을 터트린다. 그는 “나이는 35세지만 마음은 20세다. 그리고 50세까지는 뛸 수 있다”고 말한다. 조제 모리뉴 맨유 감독도 “이브라히모비치에게 ‘35’란 숫자는 ‘25’와 같다. 그는 수퍼맨”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맛이 깊어지는 와인 같은 선수들이 최근 스포츠계에서 늘고 있는 추세다. 과거엔 30대 초·중반에 은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종목에 관계 없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얘기하는 백전노장들이 많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선수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최고령 타자 스즈키 이치로(43·마이애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기 시작 5시간 전 경기장에 나와 훈련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집에서 TV를 볼 때도 시력 보호를 위해 선글라스를 낄 정도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한다. 등번호 51번이 “51세까지 선수로 뛰고 싶다”는 의지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메이저리그 최고령 투수인 애틀랜타의 바톨로 콜론(43·도미니카공화국)은 2010년 자가 줄기세포 이식술을 받았다. 그리고는 40세이던 2013년 18승을 올렸고, 44세인 내년에도 마운드에 오른다.

때론 시련이 노장들을 단련시킨다. 프로배구 한국전력 센터 방신봉(41)은 2008년 구단의 방침에 따라 옷을 벗었다. 하지만 배구장을 떠나지 못했다. 수원체육관에서 일당 10만원을 받으며 코트 관리인으로 일했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미리 체육관에 나와 매트를 깔고 네트를 쳤다. 방신봉은 “자존심이 상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이를 악물고 다시 훈련을 거듭한 방신봉은 2009년 코트로 돌아올 수 있었고, 그 후로도 7년째 뛰고 있다. 올 시즌 2위로 선전 중인 한국전력에는 세트당 0.5블로킹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는 방신봉이 있다. 별명마저 ‘노장 센터’를 지나 ‘원로 센터’지만 요즘도 블로킹을 성공한 뒤엔 아이돌그룹 엑소(EXO)의 ‘으르렁’ 안무를 본딴 세리머니를 펼친다.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인 KIA 투수 최영필(42)은 2010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고도 불러주는 팀이 없어 은퇴 위기에 몰렸다. 그렇지만 가까스로 재기한 그는 올 시즌 KIA의 핵심 불펜투수로 자리잡았다. 올시즌 54경기에 나와 평균자책점 3.61을 기록했다. 그는 경희대 야구선수인 아들 종현(19)군과 함께 뛸 날을 꿈꾸며 내년에도 마운드에 오른다.

강한 승부욕도 롱런의 중요한 비결 중 하다다. 프로농구 첫 1000경기 출장의 주희정(39·삼성)은 요즘도 경기에 지면 분해서 잠을 못 이룬다. 부인 박서인(38)씨는 “원래 ‘불혹(不惑)’이란 웬만해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인데 지고 온 날 보면 ‘저 승부욕을 어쩌나’ 싶다”고 말했다. 책임감도 빼놓을 수 없다. 프로축구 전북 이동국(37)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다섯 남매의 분유값을 벌기 위해 더 열심히 뛴다”고 이야기한다. 골세리머니로 수퍼맨을 흉내내는 그는 “수퍼맨이 돼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다”고 말한다.

2017년에도 필드에서, 코트에서 만나게 될 노장들. 그들의 기록행진은 2017년에도 계속된다. 이동국은 한국 프로축구 초유의 200골에 도전한다. 주희정은 프로농구 첫 1500스틸과 5500어시스트를 앞두고 있다. 스포츠 선수들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박린·김원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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