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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동일체 원칙 버려야 검찰이 달라진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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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호 2 면

한국 검찰이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검사 자살부터 진경준 검사장 ‘주식 대박’, 홍만표 전 검사장 전관 비리에 이르기까지 최근 검찰에서 터져 나오는 문제들은 모두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낡은 패러다임과 연관이 있다.


검사동일체 원칙은 프랑스에서 유래해 일제강점기 때 전해진 것이다. ‘검찰 조직은 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이 원칙이 만들어진 건 범죄 수사와 기소 등에 있어 검사들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검사들이 들쭉날쭉한 기준으로 수사하고 기소하면 사회적 혼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49년 검찰청법 제정 때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조항으로 명문화된 이후 검사동일체 원칙은 50년 넘게 검찰을 지배해왔다.


하지만 정치적 사건마다 검찰 간부들이 이 원칙을 활용해 부당한 압력을 넣는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12월 검찰청법 개정을 통해 해당 조항을 수정했다. 상명하복 규정을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는 문구로 고친 것이다. 특히 ‘검사는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지휘·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 여부에 대하여 이견이 있는 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검사의 이의 제기권을 도입했다.


문제는 이렇게 검사동일체 원칙과 상명하복 규정이 법전에서 사라졌음에도 검찰 조직의 잠재의식 속에선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5월 서울남부지검 김홍영 검사 자살이다. 김 검사가 남긴 카톡 메시지에 따르면 김모 부장검사는 김 검사에게 폭언과 인격 모독적인 발언을 계속해왔다. 심지어 ‘부장이 술에 취해 때린다’는 대목에 이르면 상명하복의 경직된 문화를 실감할 수 있다.


더 심각한 건 ‘자살하고 싶다’ ‘죽고 싶다’는 카톡을 수차례 할 만큼 인권 침해가 지속됐음에도 조직 안에서 전혀 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검찰 조직의 폐쇄성은 김 검사 자살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김 검사 가족이 대검과 청와대에 탄원서를 냈지만 지난 2일 대검이 직접 조사 방침을 밝히기 전까지 이렇다 할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김 검사 어머니와 사법연수원 동기 712명이 공개적으로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겠는가.


진경준 검사장 사건에서도 검사동일체 원칙의 비뚤어진 단면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3월 말 재산공개에서 진 검사장이 넥슨 주식을 매각해 120억원대의 시세차익을 얻은 사실이 드러났지만 검찰은 계속 미적거리기만 했다. 대검이 특임검사 수사를 통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사건이 불거진 지 3개월이나 지나서였다. ‘우리는 한 몸’이라는 비뚤어진 조직 우선주의가 작용한 결과다.


홍만표 전 검사장의 전관 비리 역시 ‘퇴직 후에도 우리 식구’라는 인식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직 검사 연루 의혹을 철저히 파헤치지 않은 채 홍 전 검사장 개인의 비리로 선을 그으려는 검찰 모습에서 조직 보위의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현장의 얘기들을 들으면 부장검사가 폭언을 하거나 과도한 업무를 맡겨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하는 건 김 검사의 경우만이 아니다. 간부들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강요하고, 옳든 그르든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조직 내부의 문제는 무조건 함구하도록 하는 게 지금의 검찰 모습 아닌가.


한국 검찰은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독점적 권한을 갖는다. 그러므로 수사와 기소에서 일관성 있는 원칙을 지키고 철저한 기준을 준수하는 것, 검사의 자의적인 권한 남용을 막고 관리하는 건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를 검찰 조직을 동일한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무조건적 상명하복식 문화를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과는 구분 지어야 한다. 실제로 이런 시대착오적인 검찰 문화는 내부에서도 저항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세대의 검사들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개선책 없이 “공안·특수 분야 인력을 최소화하고 형사부 인력을 대폭 확충하라”(김수남 검찰총장)는 지시는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검사가 존재하는 이유는 검찰 조직을 위해서가 아니다. 법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다. 검찰은 국민들 눈에 비친 검찰이 “조폭의 세계”(김 검사의 어머니), “검찰 내부에서도 폭언·폭행을 하는데 피의자·참고인은 어떻게 다루겠느냐”(인터넷 댓글)는 비아냥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검찰이 불신을 털고 다시 신뢰받는 검찰로 거듭나기 위해선 이제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낡은 의식을 벗어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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