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얘기 안 해줘도 잘만 팔린다고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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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호 29면

여름이 시작되기 전, 작은 화장품 하나를 샀다. 문신(Tatoo)을 한 듯 눈썹을 한 번 그리면 흘러내리는 땀은 물론이고 세수를 해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는 제품이다. 눈썹 숱이 적어 고민인 여성이라면 알리라. 바쁜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미술시간 데생 시험 보듯 눈썹을 ‘만들어야 하는’ 비애를.


명동의 한 화장품 매장에 들어가 물었다. “한 번 그리면 어느 정도 지속되나요?” 진짜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다면 그것도 문제니까. 중국 교포 특유의 말투를 쓰는 직원은 “1주일 정도 간다”고 답했다. 매장용 제품으로 테스트를 해보려는데 붓끝에서 잉크가 나오지 않았다. “이거 끝이 너무 말랐는데요.” 직원은 답했다. “그럴 땐 들고 털어주면 됩니다.”


다음날 아침, 내 화장대 거울은 밤색 잉크 얼룩으로 엉망이 됐다. 출근길에 서둘러 눈썹을 그리려는데 역시나 붓끝이 말랐고, 직원이 가르쳐준 대로 제품을 ‘살짝’ 털었을 뿐인데 말이다.


며칠 후 압구정동을 걷다 같은 브랜드의 매장이 보여서 들어가 제품의 하자 원인을 따졌다. 불평으로 가득한 내 사연을 들은 직원은 답했다. “고객님, 이 제품은 저녁에 얼굴 화장을 모두 지우고 맨 얼굴에 사용하는 겁니다. 그대로 자면 아침에는 세수를 해도 지워지지 않죠.” 화장한 상태에서 사용하면 실제로 붓 끝이 막혀 잉크가 나오지 않는단다. 지속도도 틀렸다. 실제로 사용해보니 하루 정도 지속되고 금세 옅어졌다.


일차적으론 사용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는 내 잘못이 크다. 하지만 맨 얼굴에 사용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용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직원도 무책임했다. 상품 판매담당 직원이라면 자신이 취급하는 제품에 대해 미리 주요 정보를 숙지하고 고객에게 전달하는 게 기본 아닌가.


얼마 전엔 명동에 있는 화장품 숍 7곳을 돌며 동일한 제품을 찾았다. “쉽게 붉어지는 얼굴에 좋은 마스크 팩 있어요?”


7곳의 매장 직원들은 모두 중국 교포인 듯 보였고, 그 중 3곳의 직원이 제품을 바로 추천하지 못하고 매니저를 불러줬다. 요즘 명동의 화장품 숍에서 가장 흔한 게 마스크 팩이다. 주재료에 따라 종류도 다양해서 수십 종은 족히 돼 보인다. 중국인 관광객이 10~20개씩 묶어놓은 마스크 팩을 몇 뭉치씩 사가는 것 역시 흔한 풍경이다. 그들은 과연 원하는 제품을 제대로 사가는 걸까. 1장에 1000원짜리 여행 기념품을 사며 용도와 기능까지 세세히 살필 관광객은 혹시 없을까.

명동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들은 밀려오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겨냥해 중국어가 가능한 직원을 대거 채용해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직원들의 ‘제품 매뉴얼 교육’에는 무신경해 보인다. 서양의 유명 화장품 회사들이 한국 소비자를 주요 고객으로 생각하는 건 스펀지·솔 하나까지 생김새와 기능을 따지는 ‘깐깐함’ 때문이다. 이 좋은 기질을 왜 판매에선 응용하지 못할까.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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