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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발전소 한 곳과 맞먹는 ESS, 에너지 강국 원동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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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호 7 면

에너지는 국가의 성장 동력이다. 경제발전의 전략적인 자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신기술을 개발하지 않고는 영원히 에너지 종속국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실제 2013년에 우리나라가 수입한 에너지는 1787억 달러에 이른다. 에너지 신기술은 에너지 주권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다. 핵심 기술은 ‘에너지 저장’과 ‘신재생에너지’에 있다. 정부 역시 에너지 신기술 발굴과 육성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8대 에너지 신산업 분야에 2035년까지 4조원을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나라를 ‘에너지 강국’으로 이끌 신기술을 조명한다.

“전력을 어떻게 저장하는지 알기 전까지 우리는 꼬리 없는 오랑우탄에 불과하다.” 에디슨은 130년 전 이렇게 말했다. 전력산업의 미래가 ‘저장 능력’에 달려 있음을 일찌감치 예견한 것이다. 불과 30년 전까지 전기는 저장할 수 없다는 게 통념이었다. 그러나 ESS(Energy Storage System·에너지 저장 장치)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생각이 깨졌다. 이제 전력산업은 앞서 반도체가 그랬듯 ‘더 많은 양을 얼마나 더 밀도 있게 담느냐’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8개 에너지 신사업 분야 가운데 7개 분야에 ESS가 발을 걸치고 있는 배경이다. 그만큼 활용가치가 무궁무진하다는 것. 실제 ESS는 일반 가정은 물론 대형 빌딩에도 적용되고 있다.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핵심 기술이 된 건 이미 오래전이다. 넓게는 발전소 단위에서 ESS를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거대한 배터리를 상상하면 된다. 컨테이너 하나 크기의 배터리엔 약 1㎿(1000㎾)를 저장할 수 있다. 330여 가구가 쓸 수 있는 규모다.

ESS(에너지 저장 장치)의 실물 모습. 컨테이너 하나 크기에 약 1㎿의 전력을 저장할 수 있다.

전력 저장 능력이 미래 에너지산업 좌우
종전에는 모든 발전소를 동시 가동해도 생산된 전기를 모두 공급할 수 없었다. 수요 폭증에 대비해 예비용으로 일정량을 항상 남겨둬야만 했다. 전기는 생산과 동시에 소비돼야 하기 때문이다. 전력 수요가 예측치를 넘어서는 기간은 1년을 통틀어도 하루이틀에 불과하다. 예비용으로 남겨두는 전력의 대부분이 그대로 버려진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잉여전력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에디슨의 말대로 저장해 뒀던 전력을 꺼내 사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7월 세계 최대 규모의 ESS를 구축했다. 현재 안성과 용인 변전소에 ESS를 설치해 가동 중이다. 안성에 28㎿, 용인에 24㎿가 각각 설치돼 있다. 정부는 매년 규모를 늘려 2017년에는 현재의 10배에 달하는 500㎿ 규모의 ESS를 구축할 계획이다. 화력발전소 한 곳이 생산하는 전력량은 500㎿ 내외다. 저장장치만으로 화력발전소 1곳을 대신하는 셈이다. 일반 가정용 설비 용량이 3㎾라고 가정했을 때 16만6600가구 이상에 공급할 수 있다. 이로써 연간 3200억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또 기존 예비전력에 비해 대응 속도가 빠르고, 공해 유발이 줄어든다는 장점도 있다. 게다가 안정적인 주파수 조정이 가능해져 전력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여기에 구축사업에 참여한 민간업체의 경쟁력 강화도 낙수효과로 기대할 수 있다. 이미 배터리 기술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기업이 세계 ESS 시장을 선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LG화학과 삼성SDI, 코캄 등 이번 사업에 참여한 10개 기업은 용인·안성 ESS 설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외 프로젝트에 앞다퉈 참여하고 있다.
ESS가 신재생에너지와 만나면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전력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태양광·지열·풍력·조력 발전과 같은 신재생에너지는 전력 생산에 있어 치명적인 한계를 보였다. 태양광 에너지는 낮에만 발전할 수 있고, 풍력이나 지열은 생산량이나 질이 균일하지 않다. 그러나 ESS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한다.

ESS와 신재생에너지가 만든 ‘에너지 자립섬’
한전이 전남 진도군 가사도에 구축한 ‘독립형 마이크로그리드’가 대표적이다. 섬은 에너지 소외 지역이었다. 다리라도 연결돼 있으면 전선을 연결할 수 있지만 이마저 없다면 해저케이블을 깔거나 자체 발전을 해야 했다. 풍력 발전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은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했다.
그러나 ESS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력 생산과 소비에 있어 완전한 자립을 꿈꿀 수 있게 됐다. 실제 가사도는 지난해 10월부터 ‘에너지 자립섬’으로 자리 잡았다. 풍력 발전으로 400㎾를, 태양광 발전으로 314㎾를 생산하고, 3000㎾ 규모의 ESS를 갖추었다. 그 결과 종전에 사용하던 디젤연료 사용량을 평균 84% 줄였다. 전력 품질 역시 눈에 띄게 좋아졌다. 주파수 유지율은 57%에서 100%로 올라갔다.
가사도에서 시범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정부는 울릉도에 이 기술을 본격 적용키로 했다. 인구 1만 명의 울릉도는 지난해에만 전력 생산으로 150억원을 사용했다. 전체의 95%가 디젤 발전으로 생산됐다. 정부는 2020년까지 디젤 발전을 ‘제로(0)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우선 2017년까지 현재 5%에 불과한 신재생에너지 생산 비율을 30%로 늘릴 예정이다. 부족한 부분은 가사도와 마찬가지로 풍력·태양광 발전과 ESS가 메운다. 여기에 2020년까지 지열 발전소와 연료전지를 추가로 구축해 완전한 ‘에너지 자립섬’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전력 생산 비용 절감은 물론 환경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마이크로그리드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앞서 가사도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한전은 이 기술을 앞세워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마이크로그리드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캐나다 네 번째 규모 전력 회사인 Power Stream과 지난달 MOA(실시협약)를 체결하고 북미시장 진출을 가시화하고 있다.

직류 vs 교류 ‘2차전’ … 최종 승자는 직류
전력산업의 진짜 미래는 직류 배전에 있다. 130년 전의 에디슨, 그리고 테슬라의 이른바 ‘전류대전’은 테슬라가 주창한 교류가 승리하면서 막을 내렸다. 송전하는 데 교류가 훨씬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석연료를 이용한 전통적인 발전 방식은 전력을 교류로 생산했다. 이 같은 이유로 지금도 교류 송전이 세계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 활용 폭이 넓어지면서 전세가 바뀌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는 전력을 직류로 생산한다. 게다가 최근 나오는 가전제품은 직류를 사용한다. 결국 생산과 소비는 직류인데 송전만 교류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송전만 직류로 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변환 과정을 없앨 수 있다.
그 때문에 세계 전력산업은 직류 송전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아직은 기술이 초기 단계다. 본래 직류 송전은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직류 송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핵심은 초전도 물질이다. 기존 구리 케이블 대신 초전도 케이블을 활용한다. 송전 용량이 5배 이상 크고, 송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 특히 초전도 케이블을 이용하면 직류 송전도 가능해진다. 한전은 기술개발 10년 만에 세계 최초로 직류 80㎸ 초전도 케이블을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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