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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배를 ‘다려’ 먹을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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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엄마가 끓여준 달콤하고 따뜻한 배즙 한 사발이면 독감이나 감기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배를 푹 고아 배즙을 만들 때 “배를 다리다”고 해야 할까, “배를 달이다”고 해야 할까.

“배의 꼭지를 도려내 그 안에 생강·대추 등을 넣고 다려 먹으면 감기에 좋다”에서와 같이 액체를 끓여 진하게 만들거나 약재에 물을 부어 우러나도록 끓이는 경우 ‘다리다’를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이때는 ‘달이다’라고 써야 바르다.

‘다리다’는 옷이나 천의 주름을 펴거나 줄을 세우기 위해 다리미로 문지르는 행위를 뜻한다. “다리지 않은 와이셔츠라 구김살이 잔뜩 가 있다”처럼 쓸 수 있다.

‘달이다’와 ‘다리다’가 헷갈린다면 ‘다리미’를 떠올리면 된다. 옷을 다리는 ‘다리미’를 ‘달이미’라고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리미’와 ‘다리다’가 서로 짝꿍이라 생각하면 ‘달이다’와 ‘다리다’를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와 비슷하게 ‘조리다’와 ‘졸이다’도 헷갈리기 쉽다. ‘조리다’는 양념을 한 고기나 생선, 채소 등을 국물에 넣고 바짝 끓여서 양념이 배게 한다는 뜻이다. “감자를 간장에 조렸다”처럼 쓸 수 있다.

‘졸이다’는 ‘졸다’의 사동사로, 찌개·국·한약 등의 물이 증발해 분량이 적어지게 하는 것을 말한다. “불 조절을 잘못해 된장찌개가 졸아 버렸다”처럼 쓸 수 있다.

행위의 목적을 생각하면 ‘졸이다’와 ‘조리다’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목적이 단순히 국물을 줄어들게 만드는 것이라면 ‘졸이다’, 바짝 끓여 재료에 간이 배게 만드는 것이라면 ‘조리다’를 쓰면 된다.

김현정 기자 noma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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