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빌딩의 임대인은 최순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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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은 곤란한 질문엔 하나같이 모르쇠로 일관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알지 못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최씨 소유의 건물을 빌려 사무실로 사용했다는 의혹도 전면 부인했다.

이 의혹과 관련해 많은 사람이 ‘임대’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청문회장에서 새누리당 장제원 의원도 김 전 실장에게 “미승빌딩 아십니까? 이 최순실의 빌딩을 임대해 사무실로 사용한 적이 없습니까?”라고 묻는다. 최씨 소유의 건물을 임대했느냐는 이 질문에는 모순이 있다.

미승빌딩의 소유자가 최씨라면 최씨는 임대인, 김 전 실장은 임차인이 된다. ‘임대(賃貸)’는 돈을 받고 자기의 물건을 남에게 빌려주는 것이고 ‘임차(賃借)’는 돈을 내고 남의 물건을 빌려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순실의 빌딩을 임차해 사무실로 사용한 적이 없습니까?”라고 물어봐야 김 전 실장이 그 사무실을 빌려 쓰지 않았느냐는 의미가 된다.

‘임대’와 ‘임차’의 뜻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건물이나 가게를 세놓거나 세내는 경우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임대’란 단어를 쓰기도 한다. “박영수 특검팀은 대치빌딩 3개 층을 임대했다고 밝혔다”와 같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 건물을 빌렸다는 이야기이므로 ‘임차했다’로 고쳐야 한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가족의 회사 정강은 지난해 1억원이 넘는 임대 소득을 올렸지만 사실상 세금을 한 푼도 안 냈다”의 경우 건물을 빌려주고 거둔 소득을 말하므로 ‘임대’란 용어가 적절하다. 헷갈릴 때는 세놓다·세내다, 빌려주다·빌려 쓰다로 바꾸면 문제가 없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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