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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클로즈드’…울고 싶은 연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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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백화점도 대형마트도 식당도 “손님 너무 없어요”

25일 서울의 한 백화점이 고객이 적어 한산하다. 불황에 크리스마스가 일요일과 겹쳐 유통업계엔 연말 특수가 사라졌다. [사진 전민규 기자]

25일 서울의 한 백화점이 고객이 적어 한산하다. 불황에 크리스마스가 일요일과 겹쳐 유통업계엔 연말 특수가 사라졌다. [사진 전민규 기자]

크리스마스에 일요일까지 겹친 25일 서울의 한 백화점. 목도리·장갑을 파는 진열대에서 점원들이 ‘세일합니다’라고 외쳤지만 걸음을 멈추는 사람은 드물었다. 와인·킹크랩 등을 파는 식품 매장에도 손님이 뜸했다. 와인 매장 점원이 10만원대 와인을 ‘1만원에 판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계산대는 한산했다.

불황에 정국 불안, AI도 겹쳐 소비심리 위축
백화점 매출 떨어지고 신용카드 결제도 줄어
가계소득 정체도 한몫…“돌파전략 세워야”

9년째 남성복을 판매하는 이모(45·여)씨는 “크리스마스인데도 매출은 평일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매해 연말 특수가 사라져 가는데 특히 올해가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손자 장난감을 사러 나온 김연자(66·여)씨는 가격표를 보고 한참을 망설였다. 김씨는 “유명 장난감이라고 하지만 10만원이 넘는 걸 보니 선뜻 구입하기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오정미(33·여)씨는 “지난해엔 부모님과 조카들의 연말 선물까지 챙겼지만 올해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 부진 한파가 유통시장을 덮쳤다. 한 해 장사의 마무리를 앞둔 유통업계는 우울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25일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연말 매출이 전년 대비 줄었다. 롯데백화점은 11월과 12월(21일까지) 판매 실적이 각각 0.5%, 0.7%씩 줄었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도 같은 기간 매출이 각각 1.5%, 1.3%씩 쪼그라들었다. 대형마트에서도 크리스마스 특수가 실종됐다. 가족 단위 고객이 많아 완구류와 식품 매출이 크게 오르는 시기지만 실적이 신통치 않다. 크리스마스가 의무 휴일인 일요일과 겹쳐 대부분의 점포가 휴업을 한 영향도 있었다. 익명을 원한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입사 후 7~8년 동안 꾸준히 성과급을 받았는데 올해는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2016년 11월 21일~12월 20일 기준. 증감률은 전년 동기 대비 자료:비씨카드

※2016년 11월 21일~12월 20일 기준. 증감률은 전년 동기 대비 자료:비씨카드

소비 부진에 신음하는 건 자영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이날 비씨카드의 빅데이터 분석 자료에 따르면 올 연말(11월 21일~12월 20일) 치킨·호프·소주방 등 주점업종의 카드 이용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8.6% 줄었다. 결제건수 역시 10.4% 감소했다. 개인카드(-9.1%)와 법인카드(-7.3%) 모두 전년보다 이용금액이 줄었다. 개인적인 술자리는 물론 법인 직원 회식 등도 예년보다 덜 한다는 의미다. 한정식과 중국음식점 등이 포함된 요식업종의 카드 이용금액도 지난해보다 0.5% 줄었다.

※2016년 11월 21일~12월 20일 기준. 증감률은 전년 동기 대비 자료:비씨카드

※2016년 11월 21일~12월 20일 기준. 증감률은 전년 동기 대비 자료:비씨카드

결제 1건당 이용금액은 지난해 4만5014원에서 올해 4만3057원으로 4.4% 감소했다. 특히 고가 음식점으로 분류되는 한정식(-17.9%)·갈비전문점(-14.0%)·일식횟집(-4.7%) 등의 이용금액 감소폭이 컸다. 반면 중국음식점 이용금액은 4.9% 증가했다. 외식 대신 배달 음식을 선택하는 가구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모임도 1차에서 간단히 끝낸다. 오후 7시에서 오후 9시 사이에 결제한 비중은 2014년 53.9%에서 2015년 55.8%, 올해 56.9%로 매년 증가 추세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황으로 가계가 지출을 줄인 데다 독감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등 소비 심리를 냉각시킬 요소가 계속 등장하고 있어 소비 부진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감히 지갑을 열 수 없는 상황은 굳어진 소득 정체와 맞물려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3분기 가구당 월 평균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0.7%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가구소득 증가율은 지난해 3분기 0.7%로 뚝 떨어진 뒤로 5분기 연속 0%대를 맴돌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당장 정부가 추가경정예산 등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쓰면서 장기적으로 복지를 통해 이전(移轉)소득을 늘리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20일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55.2%가 ‘지난해보다 올해 매출이 줄었다’고 답했다. 이 중 53.3%는 매출 부진의 주원인으로 김영란법 시행을 꼽았다. 서울 이태원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준현(35)씨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현실적인 피해가 큰 만큼 법을 좀 완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통업계는 당장 부진 타개책 마련을 고심하는 모습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신년 세일에 더 적극적으로 승부를 걸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주요 백화점들은 2017년 신년 세일 기간을 지난해보다 6일이나 늘려 잡았다. 현대백화점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신년 세일에 총 1억5000만원 규모의 경품까지 내걸었다.

글=성화선·장원석 기자 ssun@joongang.co.kr
사진=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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