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된 자동차엔진 달고 8년운항|극동호 화재침몰사고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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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극동호 화재침몰사고는 당국의 허술한 선박관리와 선주의 영리만 노린 무책임이 빚은 참사였다.
길이20·7m, 너비3·8M의 25t짜리 유람선에 86명이나 태우고 왕복 4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 과속운항을 한데다 선박용 엔진 대신 낡아빠져 폐차 처분된 자동차엔진을 달고 8년을 운항했으며 기관사는 무자격. 소화기는 녹슬어 작동되지 않았다.
또 구명동의·튜브등 구명장비는 꽁꽁 묶여 있었고 엔진실과 선실사이에는 방화벽도 없이 나무판자로 막아 화재에 무방비였으며 불이난 후 승무원들이 전혀 구조신호등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아 인명피해가 컸다.
◇폐차된 자동차엔진=극동호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엔진은 79년1월 유람선 건조 때 시중 중고자동차부속상회에서 사들인 2백65마력짜리 자동차 엔진.
자동차용 엔진은 냉각기 계통이 청수로 냉각하도록 제작 돼 있어 해수냉각용인 선박용 엔진과는 달라 이를 선박에 설치할 경우 부식이 심해 2∼3년을 지탱하기 어렵다는 것이 선박전문가들의 지적.
그러나 연안 여객선들이나 어선들은 대부분 마력당 6만∼8만원씩하는 선박용 엔진사용을 기피, 값싼 자동차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잦은 고장·무리한 운항=사고유람선 기관사 고대성씨(41)에 따르면 이배는 그동안 엔진고장이 잦아 1개월전에도 클러치와 냉각기를 수리한 것을 비롯, 한달사이 5차례나 정비에 정비를 거듭했다는 것. 그러면서도 지난3월13일에 실시한 정기검사에 통과했으며 하루 1시간30분만 운항하게 돼 있는데도 이를 어기고 충무∼해금강사이를 4시간(1왕복)∼8시간(2왕복)씩 운항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화재순간만 해도 엔진이 과열된 상태에서 고장이 겹쳤다. 기관실옆 갑판에 있던 승객 황운기씨(44·대구시 신기동147)는 『사고직전 엔진이 꺼져 기관사 고씨가 두차례 시동을 걸었으나 작동되지 않아 세번째 거는 순간 엔진이 작동하면서 연기가 솟고 불티가 날았다』 고 말했다.
◇사용못한 구명동의=사고배는 구명동의 1백13벌, 구명튜브 4개, 구명부기(부기)84개등 1백98점의 구조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장비들을 모두 밧줄로 묶어둔데다 승선당시 장비이용 및 비상탈출요령을 설명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불이 났을 때 승객들이 구조장비를 하나도 이용하지 못하고 선상에서 우왕좌왕했으며 선장 박씨가 배를 정박시키기 위해 인근암초에 밧줄을 매려할 때 10여명의 승객들이 한꺼번에 밧줄에 매달리다가 그대로 익사했다.
◇고장난 소화기=또 선장박씨는 위급한 상황에 대비, 긴급구조를 요청할 SSB무전시설과 충무유람선협회에 수시로 항로보고를 하는 VHF통신시설을 갖추고도 사고당시 당황한 나머지 이를 사용하지 못한데다 조타실에 설치해둔 소화기 2개도 전혀 작동되지 않아 진화작업에 손을 쓰지 못했다.
승객 유승백씨(37)는 『기관사 고씨와 함께 소화기를 작동하려 했으나 안전핀이 뽑히지 않아 사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감독부실=사고선박은 취항당시 운항코스를 충무에서 한산도까지 평수구역에만 운항토록 허가난 목선으로 파도가 심한 연해구역의 운항이 금지돼 왔으나 2년전 충무시가 해금강까지 운항코스를 변경해 줬었다. 그러나 지난3월 마산지방해운항만청이 배를 검사하면서 성능이 좋지 않다고 판단, 하루1시간30분만 운항토록 조치했었는데 이를 어기고 해금강까지 운항.
현재 충무유선협회소속 유람선은 평수구역이 4척, 연해구역이 31척등 모두 35척으로 하루 8천명이상의 관광객을 수송하고 있으나 평수구역을 오가는 진달래호등 4척의 유람선에는 아예 통신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긴급구조요청 방법이 없다.
◇인색한 보험=80여명을 태우면서 보험도 2명에게만 최고5백만원씩 보상금이 지급되는 선주배상보험만 들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큰 문제.
최근 관광붐을 타고 곳곳에서 해상 및 내수면 유람선이 늘어나고 있으나 안전대책은 여전히 소홀한 것이 현실. 특히 해상선박사고는 충돌·좌초·표류등의 경우가 대부분이나 이번 경우 유람선의 화재로 대형참사가 났다는 점에서 이 사고는 큰 교훈이 된다.<충무=이용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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