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실현적 경제 위기설이 부르는 위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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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호 18면


12월 하순, 언제나 그렇듯이 지나간 한 해를 되돌아보며 다가오는 2017년 경제는 어떨까 생각한다. 유감스럽게도 희망적인 측면이 잘 안 보인다. 반면 위험요인들은 도처에 산재하고, 그러다 보니 위기설이 넘쳐난다.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쁘다는 현실 진단에서부터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자금유출로 제2의 외환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경고도 잇따른다. 여기에 기업들의 경쟁력이 중국 기업들에 따라잡혀 한국경제가 붕괴할 거라는 이야기까지 원인과 종류도 다양하다. 일부는 구체적인 시기까지 적시하기도 한다. 위기 경고는 위기 요인을 사전에 제거하거나 완화하는 정책 대응을 서두르게 한다. 또한 가계와 기업들로 하여금 혹여 닥칠지도 모를 위기에 대비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경제주체 심리 악화되면 진짜 위기 올 수도]
그러나 위기설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먼저, 잘못된 처방을 낳을 우려다. 예컨대 현시점에서 외환위기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미국을 따라 금리인상을 서두른다면 가계부채 원리금 상환과 가뜩이나 불안불안한 부동산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우리 경제가 얼마 안 가 커다란 위기에 빠질 거라고 믿는 기업인들이 많다. 대부분이 전문가들의 위기설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 기업들이 정상적으로 투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상의 자기실현성을 감안한다면 특히나 위험하다. 또 다른 문제는 자칫 위기설 피로감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경제가 언제 위기 아닌 적이 있었냐고 되물을 정도로 위기론이 상시화된 사실을 감안하면 진짜 위기를 경고하는 메시지조차 무시돼 대책 없이 위기에 휩싸이게 될 수도 있다.


이토록 위기설이 넘쳐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전망자의 과오를 들 수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대외환경과 기업실적 악화 등의 모습이 과거 위기 때와 같다며 위기가 임박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체질은 건전성과 안정성 면에서 과거에 비할 바 없이 좋아져서 그러한 결론은 다소 어색해 보인다. 여기에 전망자의 의도가 개입될 수도 있다. 위기를 예측하지 못해서 평판이 손상 받는 정도가 오지 않을 위기를 온다고 예측하는 경우에 비해 훨씬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속 위기론을 외치다 한 번 맞추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이미 전문가로서의 자격을 잃은 사람이다. 종합적인 사고를 통한 신중한 결론은 이목을 끌기 어려우니 논리적 비약이 있더라도 선명해 보이는 위기론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특정 분야의 이해관계가 개입된 경우도 있다. 예컨대 금융시장에서는 종종 원화가치 하락을 과하다 싶게 경계하며 위기가능성을 지적하는 리포트를 볼 수 있다. 외화유출 확대로 인한 외환위기 가능성을 지적하고 원화가치 방어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일반적으로 원화가 약세를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하면 주식 혹은 채권 투자의 수익이 환차손만큼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외국인자금 유입이 줄고 유출이 늘게 된다. 외국인투자가 늘어날 때 금융자산가치가 오르고 금융기관들의 수입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금융시장과 금융산업에 위험하다는 신호가 국가경제의 위험신호로 확대될 수 있다.

[사회가 서서히 활력 잃어가는게 더 문제]
현 상황이 위기일까? 위기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른 문제일 것이다. 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와 같은 긴박한 금융위기로 좁게 정의한다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위기는 우리 경제가 장기적 저성장의 늪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며 기업의 파산이 확산되고 사회가 활력을 잃어가는 형태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위기는 긴박한 금융위기와는 달리 위기의식에 기반한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얻기가 어려워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이런 시각에서 앞의 예에서 살펴 본 환율문제를 평가한다면, 미국의 금리인상 및 트럼피즘과 맞물려 나타나고 있는 현재의 완만한 원화가치 하락은 우리 경제에 유리한 환경으로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대외부문의 안정성이 크게 개선된 현 시점에서 원화 약세가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기보다는 부분적으로나마 위축된 수출을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국내 경제가 무기력하고 성장의 모멘텀이 없을 때 원화가 약세를 띠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거시경제의 자동보정장치가 작동하는 것이며 일시적이나마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다. 섣부른 위기론을 말하기보다는 미래준비를 위한 시간을 벌 기회로 해석하고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의 개선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이라는 대의에 입각해 종합적이고 신중한 판단과 경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신민영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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