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가림식 공산품값 인하|신성순<경제부 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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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주 정부미와 32개 공산품에 이어 11일 코피등 26개 가공식품및 LPG의 가격인하를 단행토록한 일련의 정부조치는 불안 기미가 현저해진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물가상승의 발목을 잡기 위해 특별소비세도 일부 내리고 전력요금의 인하조정도 단행한바 있으므로 물가안정에 대한 정부의 집념의 강도는 쉽게 읽을수 있을것 같다.
물가가 불안해지고 생활비가 비싸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국민중에 아무도 없다. 때문에 정부의 의지와 노력은 정당히 평가받을만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이번 일련의 가격인하조치가 근본적인 차원에서 물가안정 기만을 다지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물가를 잡는다는 제스처만 보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인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
지난주의 32개 인하대상 품목을 보면 인하목이 2%미만인 것이 20개이고 그중 9개 품목은 1%미만의 내리나마나한 소폭인하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시멘트처럼 0.4%를 내리는 품목도 있다.40㎏㎏짜리 한부대에 1천8백91원하던 것을 1천8백84원으로 7원을 내린다는 얘기다.
처음부터 인하품목의 숫자만 늘려 전시효과나 거두자는 속셈이거나, 물가지수를 겨냥한 가격인하라면 나중에 가서 국민으로부터 실망과 신뢰 상실만 받게될 것이다.
값을 내리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 이번 인하작업은 정부의 행정력에 의한 일방적인 조치일뿐 아니라 인하폭의 결정도 특소세인하·전력요금인하등 직접 원가부담감소요인 외에 수출실적이 좋다든지, 영업 이익을 많이 냈다는 것도 기준이 되었다고 한다. 국제원자재가격·국제금리등 부담이 늘어 오히려 원가상승요인을 안고 있는 품목들을 행정력을 동원해 값을 눌러놓으면 당장은 값이 내러 좋을듯 하지만 언젠가는 이자까지 붙어 국민의 부담으로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정부는 73년에도 물가를 안정시킨다고 행정적으로 공산품가격을 우격다짐 인하한 일이 있다. 그러나 74년 물가는 오일파동이 겹치긴 했지만 결국 42.1%라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물가인하조치를 보면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물가안정이란 뼈를 깎는 고통뒤에 오는 것이지 할것 다하고 흥청망청하다가 행정지도 한마디로 칼로 무우 자르듯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받는 바탕위에서 경제원리와 시장기능, 그리고 세련된 경제정책운용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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