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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일퇴…심야까지 숨바꼭질 시위|6월10일은 이렇게 지나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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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6·10규탄대회」가 강행된 10일 민추협사무실 앞에서 2천여명의 시민들이 하오4시 첫 시위를 벌인 이후 롯데쇼핑·남대문시장·신세계백화점·퇴계로등 도심을 옮겨다니며 하오10시까지 6시간동안 숨바꼭질시위를 계속.
민추협사무실이 있는 평창빌딩 앞 도로와 코오롱빌딩·서린호텔 앞등에는「영구집권음모 규탄대회」가 끝난 뒤 3백∼5백여명의 시민들이 돌아가지 않고 보도에 계속 몰려 있다가 하오4시쯤 민주당당원·민추협회원·시민등 2천여명으로 인파가 늘어나자 태극기를 흔들며 「호헌철폐」등의 반정부구호를 외치며 시위.
또 하오5시30분쯤부터 대학생 5백여명이 롯데호텔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면 호텔로비안으로 달아 났다가 다시 밖으로 나오는등 2시간여동안 숨바꼭질 시위를 계속했다.
○…하오4시50분쯤엔 명동입구와 롯데쇼핑 앞길에서 서울대·성대·경희대등 대학생과 민주당원·시민등 1천여명이 「호헌철폐」「독새타도」등 구호를 외치며 진압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하는등 가두시위를 시작했다.
시위대가 손에 소형태극기를 흔들며 국민운동본부 명의로 된 「민주헌법 쟁취하여 민주정부 수립하자」등의 유인물 4종 5백여장을 뿌리며 차도로 나오자 경찰은 이들을 향해 사과탄 50여발을 쏘며 해산시켰다.
이후 시위대는 명동·을지로입구·소공동쪽으로 흩어져 달아났다가 다시 모이는등 이 일대에서 하오8시30분까지 숨바꼭질 시위를 계속했으며 하오5시30분쯤부터는 신세계 앞등에서 학생·시민들이 가세, 2천여명으로 늘어난 시위군중들이 중앙우체국 앞등 곳곳에서 최루탄을 쏘는 경찰과 격렬한 투석전을 벌였다.
학생들이 차도로 나와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는동안 시내버스를 타고 이곳을 지나던 일부 시민들과 연도의 시민들이 『와-』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치며 이들을 격려 했으며 진압경찰이 시위대에 최루탄을 쏘면 『우-』하는 야유와 『최루탄을 함부로 쏘지 말라』 는 항의를 하기도 했다.
○…하오7시30분쯤 회현동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시위대와 소공동·명동·롯데쇼핑센터앞길에 흩어져 있던 시위군중이 합세, 모두 3천여명이 함성과 함께 진압경찰을 밀어 붙이고 퇴계로입구∼신세계앞 네거리∼롯데쇼핑 앞에 이르는 도로를 완전점거.
하오8시쯤 다연발 최루탄발사지프를 앞세운 경찰이 진압을 시도하자 시위대는 명동뒷길∼퇴계로2가∼세종 호텔앞길까지 진출, 경찰의 최루탄에 맞서 투석전으로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다 하오9시20분쯤 명동성당·남산·충무로방향으로 흩어졌다.
○…하오5시5분쯤 남대문시장안에 삼삼오오 모여있던 시위 대학생들이 데모가를 부르며 대도아케이드 주변으로 몰리기 시작, 순식간에 1천여명이 되자 인근 일부상인·시민들은 『잘한다』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이때 사복전경 연행조가 시위학생을 붙잡으려 하자 일부상인들은 『학생들이 잘못한게 뭐 있느냐』며 전경을 제지, 연행해가던 조모군(20·외대2년) 을 구출해냈다.
또 시장상인들은 하오5시45분쯤 시장입구 액세서리점포 일부가 시위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에 의해 불타자 『경찰이 과잉진압하려다 불이 났으니 빨리 철수하라』는등 진압경찰에 항의하기도 했다.
시위대는 하오6시10분쯤 서울시경쪽으로 나가기 어렵자 보도블록등을 깨들고 남대문시장 뒷길 회신동일대로 진출했으며 시위군중은 2천여명으로 불어났다.
하오7시쯤 격렬한 투석전끝에 회현동일대를 장악한 시위대는 16절지크기의 모조지로 만든 성조기·민정당기를 불태우기도 했다.
○…대학생·시민 1천5백여명은 하오5시부터 1시간30분동안 서울역 앞 큰길을 점거, 시위를 벌이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밀려난 뒤 염천교·서부역등지에서 하오8시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계속.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자 일부버스·택시승객들은 구호를 따라 외치고 두손을 흔들며 호응했고 20여명의 시민들은 차에서 내려 시위에 합세했다.
또 같은 시간 박종철군이 고문으로 숨진 치안본부남영동 대공분실 근처에서도 일부 시위학생들이 몰려들어 한때 진압경찰이 밀리는 공방전을 벌였다.
○…이번대회의 하이라이트는 경적시위. 하오6시 정각 신세계백화점 앞길에서는 국기하강식과 함께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시위학생들은 일제히 애국가를 제창했고 시내버스·택시·자가용 승용차등은 거의 일제히 경적을 울리며 호응.
국민운동본부측이 행동강령으로 제안했던 「경적시위」가 이같이 큰 호응을 얻자 시위학생들도 이에 박수와 환호성으로 답례.
노선버스에서 택시·자가용승용차에 용달차까지 일제히 눌러대는 경적, 경적소리-. 지난 「3·3대회」때의 시큰둥한 시민반응만을 생각했던 시위참가 학생들마저도 믿기지 않는 듯 놀란 표정들.
○…「6·10인천시위」에는 85년4월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노사분규를 주도해 구속됐던 송경평(30·서울대기계설계과졸) 박재석(%·연대독문과 3년제적)씨등 해고근로자 2명이 하오 8시40분쯤 시위대앞에 나타나 시위를 주도, 경찰을 긴장시켰다.
시위대 규합에 능숙한 송씨등이 출현하자 경찰은 이들의 체포에 열을 올렸으나 실패.
○…체육관계자들과 올림픽준비위 관계자들은 경찰의 성급한 최루탄발사로 마산에서 열린 대통령배축구대회가 중단되자 이 사태로 한국의 이미지 실추와 88올림픽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
관중들은 경기가 중단되자 빈깡통을 던지며 항의소동을 벌였고 선풍기와 본부석에 쌓아둔 경품등을 탈취하기도 했다.
또 1천여명의 관중들은 2시간여동안 그라운드를 점거, 일부는 운동장사무실을 습격해 기물을 파손했다.
당초 이날 경기는 광주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광주시가 6·10대회에 따른 사태를 우려해 개최를 거절, 지난달30일 마산으로 옮기기로 결정했었다.
○…하오7시35분쯤 신셰계앞 도로를 완전 점거한 학생들이 한국은행 정문앞에서 자신들을 향해 최루탄을 쏘던 전경20여명을 포위, 돌을 던지며 몰려가 이들로부터 방석모·방패·최루탄 발사기등 장비를 빼앗아 도로에 내동댕이 쳤다.
이어 일부 흥분한 학생들이 이들 전경들을 에워싸고 주먹과 발길질을 하자 주위에 있던 대부분 학생들이 『비폭력』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이들을 풀어줄 것을 요구, 본대가 있는 서울시경쪽으로 보내주었다.
이에 앞서 하오7시15분쯤 미도파백화점 앞길에서 최루탄을 쏘던 20여명의 전경들도 일부 시위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채 집단구타를 당했다.
○…이한열군의 사고소식을 듣고 10일새벽 광주에서 상경한 이군의 어머니 배은심씨(49)는 병원에 도착,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의 아들을 보고 대기실로 나온 뒤 『우리 착한 강아지를 누가…』라는 말만을 되풀이하며 한때 실신.
한편 아버지 이병섭씨(55)는 심정을 묻는 기자들에게 침통한 표정으로 『이 마당에 무슨 할말이 있겠느냐』며 침묵으로 일관.
병원측은 어머니 배씨의 건강 악화를 우려, 10일상오 이병원 703호실에 병상을 마련, 휴식을 취하도록 배려하기도.
○…이한열군이 시위도중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지자 연대 교내 곳곳에는 10일하오 이군 사태와 관련한 대자보와 스티커가 나붙어 긴장을 고조.
「성고문·물고문, 이번에는 최루탄 살인」「우리 착하디 착한 아들을 살려내라」「사랑한다 그대를, 이한열군」「착한 우리 학우를 잃은 학생들은 어디가서 하소연해야 하는가」등의 스티커가 교내학생회관 입구와 벽등에 나붙었고 일부 학생들은 「한열이를 살려내라」 는 스티커를 옷에 붙이고 다니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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