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등’에 올라 탄다더니…되레 나빠진 중국 수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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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자 한국 경제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과거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비교적 빠르게 극복한 원인 중 하나는 중국 경제의 폭발적 성장에 기댈 수 있어서였다. 한·중 FTA가 발효되면 한국 경제가 인구 14억, 내수 규모 5000조원에 이르는 ‘용의 등’에 올라타 새로운 ‘중국 특수’를 누릴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이 나왔다. 정부는 한·중 FTA 발효 10년 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0.96%포인트 늘고 고용은 5만3800명 증가할 걸로 추산했다.

1~11월 수출 작년보다 11% 줄어
전자·통신·반도체·차 부품 급감
사드 이슈, 비관세 장벽도 높아져
중국 내수 중심 경제로 전환 주목
서비스·투자 등 2단계 협상 중요

한·중 FTA가 20일로 발효 1주년을 맞는다. 지난해 12월 20일 발효 즉시 고주파 의료기기 등 958개 한국산 품목에 대한 관세가 즉시 철폐됐고 5779개 품목은 올해 1월 1일 2년차 관세 인하에 들어갔다. 하지만 1년간 한·중 FTA 효과는 미미했다. FTA의 이익은 장기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해도 수치상 실적은 기대 밖이다.

1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1~11월 대(對) 중국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9% 줄었다. FTA 발효 전인 지난해(-5.6%)보다 감소폭이 커졌다. 교역량도 8.5% 줄었다. 중국 시장에서의 한국 제품 수입 점유율은 올 10월 현재 10.5%를 기록해 1위를 유지했지만 지난해 점유율(10.9%)보다는 감소했다.

자료 : 산업통상자원부·관세청

자료 : 산업통상자원부·관세청

‘FTA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못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있다. FTA 특수를 노리기에는 대외 환경이 녹록지 않았다. 특히 중국 경제가 둔화됐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총리는 올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속성장’을 선언했다. 과거 중국의 고성장을 상징한 ‘바오바’(保八·8% 경제성장률 유지)’는 고사하고 ‘바오치(保七·7% 경제성장률 유지)’도 어렵다는 점을 공표한 것이다. 실제 올해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6.7%다. 중국이라는 성장 엔진이 꺼지자 세계 교역량도 줄었다.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한·중 FTA의 효과가 발휘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대 중국 수출 감소는 중국을 비롯한 세계경제 교역이 감소한 영향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라고 말했다.

중국이 비관세 장벽을 높인 것도 FTA 효과를 제약했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과 경합을 벌이고 있는 철강, 반도체 등에 대해 중국은 비관세 장벽을 높이고 반덤핑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국가무역정보포털에 등록된 중국의 한국 상품에 대한 비관세장벽 수는 111건이다. 유럽연합(EU·203건), 미국(200건)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더욱이 중국은 최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를 문제 삼아 노골적인 통상보복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의 중국 사업장에 대한 고강도 세무조사, 한류 제한 조치 등이 대표적이다.

자료 : 산업통상자원부·관세청

자료 : 산업통상자원부·관세청

이런 점을 감안하면 그나마 한·중 FTA가 수출 급감을 제어하는 역할을 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실제 관세 인하 등의 효과가 있는 FTA 특혜 품목의 올 1~11월 수출은 전년 대비 4% 줄었다. 비특혜품목(-12.8%)보다 감소폭이 작다. 유아용품(43.8%), 섬유제품(17.1%)과 같은 소비재 제품의 경우 1년 전보다 수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 우려됐던 농수산품의 피해는 없었다. 중국으로부터의 농산물 수입은 2.1% 줄었고 수산품은 3.8% 증가하며 비교적 ‘선방’했다.

문제는 한·중 FTA 효과를 제약한 중국 경제 둔화와 비관세장벽 강화 등이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본격화하면 한국도 불똥을 맞을 수 있다. 한국의 대 중국 수출품 중 70% 이상이 중간재(제품을 생산하는 데 쓰이는 원료나 부속품)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산 부품이 들어간 중국 생산품에 대한 보호무역조치를 하면 한국 기업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비관세장벽을 더욱 공고히 할 수도 있다.

이에 한·중 FTA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외교적 채널을 동원해 한·중 FTA의 적극적인 이행을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이날 세종시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FTA의 이점은 교역이나 투자를 늘리는 부분도 있지만 양국 간 통상현안을 체계적으로 제기하고 해결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는 면도 있다”며 “비관세장벽 등 다양한 통상현안들을 한·중 FTA라는 장치로 협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중 FTA 2단계 협상도 중요하다. 한·중 FTA는 발효 후 2년 안에 서비스·투자 분야의 협상을 개시하도록 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서비스 분야에서 최대한 한국의 이익을 얻어내야 한다”며 “중국의 한류 제한 조치는 일시적일 가능성이 큰 만큼 방송, K-팝 등 문화산업 개방 확대를 모색해 한류 제한이 풀린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내수 중심 경제’로 변화하는 것에 대응해 FTA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천용찬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중 FTA 이후 유아용품 등 한국산 소비재가 인기를 얻고 있다”며 “소비재 수출을 확대하고 부품 등 중간재는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제시했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은 “중소기업들은 중국의 내수 시장 구조 변화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며 “정부가 중소기업에 FTA 활용이 유망한 중국 내수용 품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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