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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은 키친 캐비닛…국정 관여한 건 1% 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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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박근혜 대통령이 법률대리인단을 통해 탄핵소추의결서에 기재된 5개 헌법 위배·8개 법률 위배 행위가 모두 사실이 아니라며 탄핵심판 청구가 각하 또는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재에 제출한 박 대통령 답변서 보니
“공무원이 최씨 특혜 준 건 개인비리
대통령에게도 책임 묻는 건 연좌제”
세월호 땐 “정상 지시하고 현장 지휘”
전 정권 봉하대군·만사형통 거론도

국회 여야 의원, 법조인 등으로 구성된 탄핵심판소추위원단과 실무대리인단은 18일 국회에서 연석회의를 열고 박 대통령 측이 지난 16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이 같은 내용의 답변서 전문(26쪽 분량)을 공개했다. 이들은 이 답변서에 대한 반박 의견서를 작성해 오는 22일까지 헌재에 제출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 측은 국민주권주의 및 대의민주주의 위반 여부와 관련해 “최순실씨의 국정 관여는 사실이 아니고 입증된 바 없다”며 “언론이 제기한 의혹만 놓고 봐도 대통령의 국정수행 총량 대비 최씨 등의 관여 비율을 계량화한다면 1% 미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정수행 과정에서 최씨의 의견을 듣고 이를 국정에 일부 반영했더라도 이는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일로, 최종 결정은 박 대통령이 했고 그 집행도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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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사유 중 박 대통령이 최씨 추천 인사를 요직에 기용하고 최씨의 사익 추구에 방해가 된 고위 공무원을 쫓아냈다는 부분에 대해선 “법적 절차를 거쳐 임명된 공무원들로 박 대통령이 최종 인사권을 행사한 이상 일부 인사 과정에서 지인의 의견을 참고했다 하더라도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 “공무원들이 최씨 등에게 특혜를 제공했다 할지라도 이는 개인 비리이고 박 대통령은 그 과정에 관여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모금 및 뇌물수수죄 성립 여부에 대해선 “기업들에 강제적으로 재단 출연을 요구한 바 없다”며 “기업인들에 대가를 조건으로 기금을 부탁한 것은 아니므로 뇌물수수의 ‘고의’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어 “뇌물죄 등의 의혹은 최씨 등에 대한 1심 형사재판 절차에서 충분한 심리를 거친 후 결정돼야 한다”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할 중대한 법 위반은 없다”고 탄핵심판 절차의 문제를 지적했다. 아울러 4~5%대의 낮은 지지율 및 100만인 촛불집회 등으로 국민들의 탄핵 의사가 분명해졌다는 주장에 대해선 “대통령의 임기보장 규정을 몰각, 무시하는 위헌적 처사”라고 반박했다.

박 대통령 측은 세월호 참사 대응 실패로 인한 생명권 보장 위반 주장에는 “세월호 사고 당시 청와대에서 정상 근무하면서 유관기관 등을 통해 피해자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하고, 대규모 인명 피해 정황이 드러나자 중앙재해대책본부에 나가 현장 지휘를 했다”며 “대응에 일부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국민 정서에만 기대 헌법과 법률의 책임을 문제 삼는 건 무리한 주장”이라고 맞섰다. 박 대통령 측은 세월호 참사 당일 구체적인 행적은 공개하지 않았다.

또 최씨 지인 회사인 KD코퍼레이션 특혜 의혹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경제적 이익을 받은 바 없고 최씨와 공모하지 않았으며 금원을 받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적극 해결해 주라고 관계 수석에게 지시한 것은 국정 업무의 일환으로서 제3자 뇌물수수의 고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순실씨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최씨 책임을 대통령에게도 묻는 것은 헌법상 연좌제 금지 및 자기책임 원칙에 위배된다”는 의견을 냈다.

청와대 기밀 문건 등의 유출에 대해선 “대통령의 지시로 최순실씨에게 전달된 것이 아니며, 유출된 연설문은 선언적·추상적 내용으로 기밀 누설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최씨를 ‘키친 캐비닛(Kitchen Cabinet·주방 내각)’으로 지칭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대통령의 형 노건평이 ‘봉하대군’이라고 불렸던 사례,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만사형통’이라며 여러 경로를 통해 대통령에게 민원을 전달한 이상득 전 국회의원 사례 등이 있다”고 주장했다. 키친 캐비닛은 대통령의 식사에 초청받아 격의 없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대통령과 어떠한 사적 이해나 정치관계로 얽혀 있지 않아 여론을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추미애 "황당한 변론”=박 대통령 측의 답변 내용에 대해 야당은 일제히 비난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황당한 변론”이라고 꼬집었고, 같은 당 박경미 대변인은 “그야말로 혼이 비정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울먹이며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던 위선이 가증스러울 뿐”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측도 “대통령이 뻔뻔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참으로 후안무치하다”(안철수 전 대표), “무식해서 용감한 것인지 오만해서 뻔뻔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참으로 망측한 논리”(양순필 부대변인) 등의 반응을 보였다.

현일훈·이지상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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