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비대위원장’ 여부가 새누리 분당 가를 이정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10호 3 면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오른쪽)이 16일 원내대표 투표를 마친 뒤 정우택 신임 원내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정책위의장으로 뽑힌 이현재 의원. 박종근 기자

1승1패. 갈등이 극에 달한 새누리당 내 친박·비박계 대결의 성적표다.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 뒤 당권의 균형추가 비박으로 기우는 듯했지만 16일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박계 후보인 정우택 의원이 당선되면서 주도권이 다시 넘어갔다. 두 계파가 서로 한 방씩 주고받은 셈이다. 이 때문에 21일 즈음으로 예상되는 당 비상대책위원장(대표 권한대행) 자리를 누가 차지하는지가 계파 대결의 승부수가 될 전망이다. 비대위 장악 대결에서 친박이 이기면 비박 의원들의 집단 탈당, 비박이 이기면 친박 주요 인사들의 ‘강제 2선 후퇴’가 본격화될 수 있다. 비대위원장은 약 800명 규모의 당원 모임인 전국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추대되는 게 관행이다.


정우택 신임 원내대표는 17일 통화에서 “비주류(비박) 측에 차기 비대위원장 인선 등 당 운영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비주류 내에서도 의견이 제각각일 수 있기 때문에 김무성 전 대표를 통해 합의된 의견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16일) 인터뷰에서 “비대위원장은 중도나 비주류 쪽에서 추천하는 인사로 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유승민 의원의 의견은 묻지 않느냐”는 질문엔 “경륜이 높은 김 전 대표를 통해 통합 의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비박계는 세력을 주도하고 있는 두 인물인 김무성·유승민 간 의견차가 있다는 점을 정 원내대표가 이용하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 원내대표가 ‘결국 비주류 내부에서 합의된 의견을 듣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친박 성향의 인물을 비대위원장 후보로 내세우지 않겠느냐는 예상이다. 이에 대해 정 원내대표는 “그런 오해가 있을 것 같아서 비주류측에 시한을 못 박지 않았다”며 “합의된 의견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다.


실제 차기 비대위원장 후보와 관련해 둘 간의 의견은 갈린다. 16일 원내대표 선거 결과가 발표된 뒤 유 의원은 정책위원회 의장 후보로 출마했다가 떨어진 김세연 의원 등 6명과 함께 서울 마포의 한 횟집에서 오찬을 겸한 대책회의를 열었다. 주로 논의된 것은 비대위 구성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의원들은 “중도 보수의 가치를 내세우면서 당을 개혁할 수 있는 사람은 유승민뿐”이라며 유 의원에게 비대위원장 도전을 요청했다.


다른 비박계 중진 의원들도 잠시 후보군으로 거론됐지만 “비대위원 자리 중 일부를 친박에게 양보할 만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 위원장을 맡으면 당이 개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줄 수 없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이에 대해 유 의원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내가 적임이라고 한다면 뭐…(생각해 보겠다)”며 말끝을 흐렸다고 한다. 한 참석 의원은 “유 의원을 지지하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의 준비는 사실상 다 끝났다고 봐도 된다”며 “조만간 공식 발표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 안팎에선 유 의원이 비대위를 장악해→친박 주요 인사들의 영향력을 철저히 배제하고→당 혁신 이미지를 만들어→내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선전하는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대선 주자로서의 입지가 확장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유 의원 측은 당권에 대한 욕심을 부리는 것으로 비치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유 의원이 16일 당직자 면담에서 비대위원장을 독배에 비유한 것도 이 같은 우려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유 의원은 “비대위원장은 (당의 위기 상황에서) 거의 독배를 마시는 자리인데 손 들고 하겠다는 사람도 없고 저도 마찬가지”라며 “당분간 신중하게… 지금은 드릴 말씀도 없다”고만 말했다.


반면 김무성 전 대표 측은 ‘유승민 비대위원장설’에 대한 반대 기류가 강하다. 한 중진 의원은 “대선 주자가 본인 선거 준비를 하면서 당 개혁까지 하려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비박계에선 김 전 대표의 비대위원장 추대 움직임이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다른 의원은 “당 개혁에 대한 전권을 준다면 몰라도, 분권형 비대위라는 명분으로 친박 세력이 개입할 여지를 남겨둔다면 개혁 작업은 전혀 진전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미 대표 시절 다른 친박 최고위원(서청원·원유철·이인제 등)에게 휘둘려 고생했던 기억 때문에 김 전 대표 본인이 선뜻 나서진 않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결국 비박계 내에서 합의된 의견이 나오지 않으면 정 원내대표가 친박·비박 공동 비대위원장 체제를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 김관용 경북지사와 유승민 공동 비대위원장 논의도 친박계에선 이미 거론됐다. 하지만 비박계 상당수는 이를 ‘나눠먹기식 봉합 꼼수’로 보고 있어 비대위원장 윤곽이 드러날 21일을 전후해 탈당이 본격화될 수도 있다. 친박계의 한 중진 의원도 유 의원을 겨냥해 “고름이 살로 변하는 것 봤느냐”며 “단독이든 공동 비대위원장이든 유 의원에게 주도권을 줄 수 없다”며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미 “보수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며 탈당 의지를 밝힌 김 전 대표는 유 의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유 의원은 16일 당직자 면담에서 “탈당은 안 된다는 생각을 오늘까지도 하고 있다”며 “당에 남아서 마지막까지 제가 할 수 있는 노력과 투쟁을 끝까지 하겠다”는 뜻을 다시 밝혔다. 한 측근 의원은 “‘마지막까지 노력하겠다’는 말엔 비대위원장 선출을 마지막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지 않겠느냐”고 해석했다.


김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유 의원을 데리고 나가야 탈당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다”며 “저렇게 버티고 있으면 개헌 작업과 차기 대선 준비를 언제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에 답답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비박계는 김무성·유승민 동반 탈당이 결정되면 최소 30명의 의원이 탈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존 탈당파인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의원도 탈당 움직임을 부추기고 있다. 이들은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당 창당 조언 : 21세기 한국 정치의 신주류’를 주제로 토론회를 연다.


최선욱기자 isotop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