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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우정사이, 그속에서 꽃피는 예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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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호 30면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무엇일까. 비록 지난해 3억 달러(약 3538억원)에 팔린 폴 고갱의 ‘언제 결혼하니?’에게 1위를 빼앗기긴 했지만 폴 세잔(1839~1906)은 오랫동안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작가 타이틀을 지켜왔다. 한 달이 멀다하고 역대 최고가가 뒤집히는 미술시장에서 2011년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이 세운 2억5000만 달러(약 2948억원) 기록을 5년간 유지했고, ‘레스타크에서 본 풍경과 디프 성채’도 2050만 달러(약 295억원)에 팔리는 등 애호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생애는 어떠했을까. 풍요로운 색채와 깊이감 있는 그의 그림처럼 격조 높고 우아한 삶을 살았을까. 15일 개봉한은 세잔(기욤 갈리엔)과 에밀 졸라(1840~1902)의 우정을 토대로 이들의 작품 세계를 집중 해부한다. 1852년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의 시골 학교에서 만난 이들은 금세 서로의 천재성에 매료된다. 부유한 은행가의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세잔과 이탈리아계 혼혈로 아버지를 일찍 잃은 졸라(기욤 카네)는 서로의 결핍을 예술혼으로 채워주기에 가장 적합한 존재였다.


화가로서, 시인으로서 이들의 작품이 한날 한시에 인정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세상은 결코 그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앞서나가는 졸라를 세잔은 한없이 질투했고, 늘 이야기에 목말라 있던 졸라는 세잔의 삶을 곧잘 문학의 소재로 삼았다.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할 때마다 늘 불안해하면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는 음울한 예술가의 삶은 곁에서 지켜보기엔 힘들어도 책 속에서 만나기엔 지극히 매력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페이지마다 내 이름이 쓰여있고, 나의 죽음이 읽힌다”며 새로운 책이 출간될 때마다 세잔이 난리를 피운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영화‘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

반면 22일 개봉하는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은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쉴레(1890~1918)의 생애를 사랑을 중심으로 담아냈다. 쉴레(노아 자베드라)의 첫 번째 뮤즈는 여동생 게르티였다. 두 살 때부터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그는 여동생의 누드를 그리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에게는 가장 사랑스러운 동생이자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였던 것이다.


이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댄서 모아 만두와 영원한 사랑 발리 노아질, 부인 에디트 하름스에 이르기까지 영감을 주는 뮤즈는 바뀌었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욕망을 자유롭게 풀어주길” 원했으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적나라하면서도 욕망에 충실한 누드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여자를 대상으로밖에 이용할 줄 몰랐지만, 그가 뿜어내는 음울한 매력에 여자들은 빠져나올 줄을 몰랐다.


비록 두 영화가 다루는 시공간은 다르지만 여기에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만큼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당대 최고 유행하던 마네나 앵그르의 그림을 “부르주아들의 포르노”라고 무시하며 자꾸만 깊게 더 깊게 후벼파고 들어가는 세잔을 주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부인조차 “당신은 저 그림 속 잡년을 살리려고 매일 나를 죽인다”며 “제발 나를 시체 보듯 보지 말고 진짜 삶으로 돌아오라”고 갈구했다.


쉴레 역시 마찬가지다. 일찍이 클림트는 그의 그림을 알아보고 후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지만 평단은 그렇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으로 군대에 가야했던 그는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 가장 사랑하는 여인 대신 자신에게 안정적인 공간과 재료를 제공해줄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여자를 택했다. 그녀는 “날 이렇게 그리는 게 싫다”며 “누드에만 집착하지 말고 다른 걸 그려보라”고 간청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사랑과 이상은 저 너머에 있는 것일뿐, 눈앞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던 탓이다.


이들의 예술세계를 온전히 구현해내기 위해 두 감독은 다른 전략을 사용했다. 다니엘르 톰슨 감독은 프랑스의 대표 배우 두 명을 나란히 캐스팅했고, 배우 출신인 디터 베르너 감독은 기존에 본 적 없는 연기를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그에 꼭 맞는 신인을 발굴했다. 주어진 캔버스는 같았지만 마치 세잔과 쉴레의 그림 스타일만큼이나 다른 기법을 구사한 것이다.


허나 두 영화 모두 매 씬이 한 폭의 그림 같이 아름다운 미쟝센을 선사한다. 살아생전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천재들이 남긴 명작과 스크린에 구현되는 20세기 유럽의 풍광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그린나래미디어ㆍ티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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